월간지 201-250 200호 열한시 200호 요한계시록 “144,000인” 교훈-144,000인이 유대인이라면

열한시 200호 요한계시록 “144,000인” 교훈-144,000인이 유대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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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요한계시록 십사만 사천인에 대한 대표적인 두 가지 주장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 “144,000은 유대인 또는 우리 교회 또는 교단이다.”

첫 번째 주장은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인은 7년 환란 중의 유대인이거나 또는 우리 교단이나 교회 사람들이라는 주장입니다.

“십사만 사천인은 우리 교단이나 교회 사람들만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굳이 다른 설명을 드릴 이유가 없다는 것에 여러분도 동의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혹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 중에 위와 같은 교리나 신앙에 젖어있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 글을 통해 알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

또한 “144,000은 7년 환란 중의 유대인”이라는 주장은 지금까지 월간지를 통해 살펴본 “영적 이스라엘”을 읽으셨다면, 요한계시록의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는 이해를 하셨을 것입니다.

더불어 이번 호부터 십사만사천인의 연구는 영적 이스라엘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란 것을 더욱 확실하게 증거 하는 글이 될 것입니다.

7년 대환란 교리의 주장처럼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인이 유대인일 경우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몇 가지 생기게 됩니다.

1. 십사만 사천인만 주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설 수 있으며 그들만이 부르는 다른 노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동안 성경의 6,000여 년 역사 속에서 믿음과 신앙을 지킨 그리스도인들조차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인데, 그동안 예수님을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7년 대환란 후 3년 반 기간에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는 이유 하나로 유대인만이 주님과 시온 산에 설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까?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1~3)

2. 또한 유감스럽게도 십사만 사천인만이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성경 속의 이름은 그 사람의 신분과 명예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

3.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 당황스러운 일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진주문 위에 쓰여 있는 현판 때문에 그러합니다. 세상에서도 성문에 쓰는 현판의 이름은 매우 큰 의미를 상징적으로 부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서울 도성(都城)의 사방에 세운 성문인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은 숙정문(肅靖門)등으로 불렀으며 각각 그 문 이름에는 뜻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성전에도 12문이 있는데 그 문 위에 각각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요한계시록 21: 12~13)

그 문들 위에는 오직 이스라엘 자손 12지파의 이름만을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박고 고통받고 환란을 겪으며, 피 흘리기까지 믿음으로 순교한 성도들은 거의 이방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만이 있다는 것이 성경적으로 합당하며 하나님의 뜻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우리는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야 할까요?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고 상고할 때 그 교훈은 누구나 보기에 상식적이며 또한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깨닫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소유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라, 즉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아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러한 세상의 잘못된 교리들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한 사실들과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이 성경의 진리와 어떻게 위배되며 어떠한 교훈이 성경적으로 합당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두 번째 쟁점 “144,000인의 숫자의 의미”
두 번째 쟁점입니다. 십사만 사천인의 숫자의 상징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44,000명은 상징의 숫자이다. (사람들이 더 있다.)
2. 144,000명은 정확한 숫자이다.

그러나 둘 다 성경적으로 어느 해석 부분도 명쾌하지 않습니다.

십사만사천인의 의미는 어느 한 민족, 어느 한 교단의 사람들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는 것은 많은 신실한 신학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의 공통된 의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사만 사천인의 숫자에 대해서만 논하는 많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말씀의 핵심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그 십사만 사천인의 믿음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글을 읽으시면서 십사만 사천인의 숫자에 관한 정확한 “의미”를 여러분 스스로 신앙적으로 정립하시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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