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9호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은 가족입니다

[둘이 하나 부부일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은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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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은 가족입니다. 어렸을 때 가족없이 자란 저는 9년 전 지인분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지만 시부모님과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남편의 무릎 수술로 인해 제가 집안의 경제를 책임 지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밤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며느리 고생한다고 늦게까지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시는 시부모님과 고생했다며 다독여주는 남편의 위로에 힘입어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었는지 결국 제 몸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하고 병원에 꼬박 1달간 입원했었습니다. 퇴원 후 집에서 쉬어야 했지만 형편이 넉넉치 않았기에 마냥 쉴 수만은 없었습니다. 내 몸도 힘든데 나가서 일해야 한다는 현실에 남편이 미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 마음…. 아내 고생시켜 병 났다며 마음 아파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트브를 보던 남편이 지금의 11시교회를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남편과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기에 밤에 집에 오면 씻고 잠자기 바쁩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 생각은 안하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말씀을 듣습니다. 조용히 들으면 좋은데 크게 틀어 놓고 들으니 제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짜증을 냈습니다.

남편이 그 당시에 그렇게 한 것은 아내가 참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참 평안을 누리길 간절히 원했기에 그렇게 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웠지요.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하더라고요. 악한 도시에서 힘들게 사는 것 보다는 시골에 내려가 하나님이 지으신 천연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며 살고 싶다면서요. 서울에서만 살던 사람이 어떻게 시골생활을 할 것이냐며 부모님께서도 반대하셨습니다. 정 그렇게 하겠다면 저희 둘만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남편의 고집으로 강원도 산골 서석에서의 시골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생활하기엔 쉽지 않았습니다. 며칠은 공기 좋고 조용해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현실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가 강원도 시골로 내려간 그 해 겨울은 전국이 한파로 꽁꽁 얼어버린 해였습니다. 강원도는 얼마나 더 추웠겠습니까? 영하 25도의 한파로 보일러 고장에, 수도는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아 며칠 씻지도 못하였습니다. 목욕탕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워낙 외진 시골이라 목욕탕도 없더라고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동네 어르신이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길에서 만나 몇 번 인사만 했는데 그 모습이 좋아 보였나 봅니다.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내려와 고생한다며 어려워 말고 집에 와서 물을 길어 가라고 하셨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배려로 물을 길어와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이웃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다 저는 생계를 위해 남편과 떨어져 속초로 일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코다리 만드는 일이었는데 그 일이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금요일에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위해 일주일 반찬을 만들어 놓고 일요일에 속초로 갔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아무리 잘 가르쳐주어도 잘 안되더군요. 젊은 사람이 힘든 일하는 게 기특하다며 격려해 주시고 손이 빨라 금방 배우겠다면서 용기를 주셨어요.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 조금 실력이 늘어 재미있을 때 숙소를 비워줘야 하는 문제로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와 생활하면서 두 달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안해졌습니다. 일할 곳이 없으니 수입도 없었지요. 막막하기도 했고 후회도 했습니다. 시골까지 와서 고생한다며 남편한테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저희 형편을 아시고 지인 분들을 통하여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말로는 하나님께서 지켜 보호하여 주신 것에 감사드리면서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 것을 다짐하고 기도하면서도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며 조급해하고 물질에 절절 매는 한없이 작고 연약한 저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께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홍천에 있는 직장을 남편과 함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다니기엔 왕복 2시간으로 매일 멀미약을 먹고 출근해야 하는 저에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일주일을 출퇴근하던 어느 날 같이 일하시는 분 중에 집을 임대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남편을 좋게 보셨는지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형편에 딱 맞는 상황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서석에서의 삶이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석에서 삶을 청산하고 홍천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된 뻥튀기 회사라 일도 많고 일손도 부족했습니다. 처음 며칠은 잡다한 일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남편과 뻥튀기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없는 영상 53도의 뻥튀기실은 불가마가 따로 없었습니다. 작업환경은 열악했지만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열사병으로 어지러움과 구토로 병원에 다니는 남편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전국이 폭염으로 후끈 달아오른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던 남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갑자기 주저 앉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일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 저의 건강이 우선이었기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동안 혼자라면 감당할 수 없었겠지만 둘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시골 생활이 녹록치 않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을 붙들게 하시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계기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하여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보라’라는 제 이름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보배롭게 높여드리는 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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