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8호 왕따가 된 아들

[부모와 자녀] 왕따가 된 아들

22
0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전교생이 60명 남짓한 시골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4학년은 모두 여덟 명입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학교까지 여덟 명이 함께 갈 겁니다. 언젠가 아들이 “엄마, 친구들에게 하나님 말씀 전하라고 이곳에 나를 보내신 거 같아”라고 하더군요. 물론 제가 그런 말을 여러 번 했었지요. 그래도 나이를 먹으며 자기주장이 강해져 점점 말 안 듣는 아들 입에서 가끔 그런 말이 나오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요. 처음 입학하여 2학년까지, 아들이 가끔 성경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재미있게 듣고 또 질문도 한다면서 좋아했습니다. 2학년 때는 반장도 해보고 평탄한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날 아이들 기분에 의해 반장이 선출됨.^^ )

그런데 3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되어 친구들이 자꾸 때리고 따돌린다는 아들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도 침착하게 “우리 아들 속상했겠네. 친구들이 왜 그럴까?” 위로를 해주었는데 점점 더 친구들이 못 생겼다고 놀리고 때리며 놀아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맘은 속상하지만 친구들이 이유 없이 그렇게 하진 않겠지 생각하고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했을 때 친구들이 때리는데?” 친구들이 조금만 장난쳐도 화를 내고 때린다는 겁니다.

“네가 장난쳐서 그런 거네” “친구들도 다 그렇게 장난치고 놀아. 하지만 난 안 때려 근데 친구들은 때린단 말이야” 매우 속상한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못생겼다고 계속 놀려서 “우리 엄마는 나 보고 잘 생겼다고 했어.” 하니까 친구가 “엄마니까 당연히 그렇게 얘기하지.” 하고 “교회에서 처음 본 자매님도 나보고 잘 생겼데” 하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얘기하지” 하더랍니다. 또 “놀리면 안 돼” 하니까 놀리는 게 아니라 사실을 얘기하는 거라고 말한답니다.

요즘 아이들 참 말도 잘하지요. 아들은 말로 대응을 하지만 말로는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아들이 워낙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아이라 주말마다 반 친구들이 거의 다 왔다 갔을 정도로 집에 친구들이 자주 와서 놀았습니다. 같이 밥도 먹고 롤러장이나 방방장 같은 곳에도 같이 다니다 보니 아이들의 집안 형편을 자연히 잘 알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엄마를 둔 아이, 편부모 아이, 장애가 있는 아이,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아이입니다. 가정환경이 그리 좋지 못한 친구가 대부분입니다. 베트남 엄마들은 일한다고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고 편부모인 친구들은 할머니와 살다 보니 버릇없다는 말을 듣는 편이지요.

이런 친구들의 형편을 생각하다 보니 답답하고 맘이 안 좋았습니다. 아들은 심성이 온순해서 부모에겐 편하게 해도 남들에게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때리지도 못합니다. 유일한 방어는 말하는 거 아니면 선생님께 이르는 것이지요. 한번은 계속 선생님께 이르니까 선생님도 힘이 드셨던지 혼자 해결해 보라고 했다더군요. 어느 날은 연필이 두 동강이 나 있길래 왜 그런지 물어보니 너무 화가 나고 분해서 연필을 부러뜨렸다고 합니다. 저는 때리는 아이보다 맞는 온순한 아이를, 또 나처럼 조급한 마음이 아닌 여유 있는 맘을 가진 아이를 주시길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셨지요.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을 당하니 속이 많이 상하더라고요. 사태가 이러하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해결해 주시며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때리는 친구들은 집에 놀러 오거나 마주칠 때 좋은 말로 타일렀지만 나아지지 않아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또 때리면 부모님과 선생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때리는 것은 해결이 되더군요. 하지만 놀림과 따돌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전도하기 위해 가끔 만나는 다른 학년 엄마들과 대화하던 중 아들의 형편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동네라 아들 친구들의 집안 형편을 나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있더군요.

지난해 우리가 외국에 두 번 나갈 기회가 있어서 아들은 여행 중에도 친구들 선물을 다 챙기고, 집에 놀러 왔을 때 아빠가 같이 야구 놀이도 해주고, 밥이랑 간식도 챙겨 주며 잘해 주었는데 왜 아들에게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한 엄마가 “언니, 그거 아이들이 부러워서 그러는 거예요.”하며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자존심 그리고 자격지심까지 생겨서 그러는 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정말 일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외국 여행 갈 때도 아들이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선생님부터 조금 보태서 전교생과 부모들이 다 알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지난 일들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집에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도 부드럽게 얘기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얘기하면 안돼. 그런 행동하면 안돼” 하며 아이들 맘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고, 또 아들도 저처럼 친구들에게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고, 또 성경 이야기를 할 때 친구들이 아들에게 “진지충”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의 신조어)이라고 하는 걸 보면 우리 가족이 친구들에게 “참 율법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내 아이의 잘못보다 다른 아이들의 문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들이 사랑이 아닌 율법적인 부모의 모습 그대로 친구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또 친구들의 환경과 입장은 배려하지 않고 얼마나 부러움을 사게 했는지 참 부끄럽고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정작 바리새인처럼 행동을 하고 있는 나와 아들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나의 율법적인 면이 그대로 아들을 통해 남에게 전달되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드린 저의 간절한 기도는 내가 가진 모든 연약함이 밑바닥까지 다 드러나 고침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참 잘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나의 연약함이 남편에게 드러나, 남의 티를 보지 말고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라는 말을 남편을 통해 들었고, 실수이긴 하지만 입을 잘못 놀려 형제자매님의 맘을 어렵게 만든 일도 있었습니다. 아들의 학교생활을 통해, 또 가정과 이웃을 통해 주님께서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감사하게도 하나씩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 문제와 씨름하며 깊은 회개의 자리로 이끌어 치료해 주시는 일도 하고 계십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부러운 마음을 친구들에게 갖게 하면 참 미안한 일이야. 친구들에게 너무 자랑하지 마, 또 이러면 안 돼 저러면 안 돼 하는 말도 하지 말고, 그럴 땐 친구를 위해 맘속으로 기도해” 그렇게 하나씩 부족함을 해결해 가면서 시간이 흘러 아들은 3월에 새 학년이 되었는데 친구들과 아주 친하진 않지만 따돌림은 당하지 않는 것 같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신보다 더 존중하고 각자 자기 일만 돌아보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보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마음이니”(빌2:3-5 KJV)

이렇게 날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매일 거듭난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아들을 통해 그 빛이 비치길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댓글 남기기

메시지를 입력해주세요.
이름을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