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8호 제2부 원죄설의 역사와 문제점

제2부 원죄설의 역사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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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9).

원죄설을 만들어낸 어거스틴

사도들이 모두 죽은 후 교부들의 시대가 된 AD 300년 이후는 기독교 역사에서 신학적인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교회는 진리와 오류를 혼합해버렸습니다. 교회 안에 점점 이교의 가르침이 들어와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짓 복음이 교회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 중에서도 원죄설은 거짓 복음의 핵심입니다.

원죄설(ORIGINAL SIN)은 초대 로마 카톨릭의 교부 어거스틴이 주창한 것입니다.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어거스틴(354년)은 마니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났습니다. 어거스틴은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마니교에 빠져 있었습니다. 마니교는 3세기경 바벨론에서 태어난 마니에 의해 창설된 종교로써 우주에는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대립된 두 원리가 공존한다는 철저한 이원론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교의 하나입니다.
그는 교육열 높은 아버지 덕택으로 로마와 카르타고 등지에서 이교의 가르침을 교육받고 자라다가 젊은 시절 동안 방탕한 생활을 살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요청에 의해서 암부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 사상에 눈을 뜨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과 신플라톤주의 서적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또한 마니교의 사상에 오랫동안 영향을 받은 상태에서 교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는 저서를 통해 많은 이교의 오류들을 기독교에 들여오는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아담의 죄 때문에 정죄받은 죄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존재 상태, 바로 그것이 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고대 이교들의 상징은 선과 악의 균형이었습니다. 빛과 어둠이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악신과 선신이 같이 존재한다는 대립 사상이 이교 가르침의 중심 사상입니다. 어거스틴은 원죄설을 만들어내면서 그런 이교의 가르침을 성경의 진리와 혼합했습니다. 이교의 중심사상인 악신과 선신이 항상 대립상태로 같이 존재하는 것처럼 내 속에서도 선한 것과 악한 것이 항상 대립하고 있기에 내가 마음에 원해도 악의 영향을 받고서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교의 사상이 약간 탈바꿈하여 원죄설이 되었고 그것이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원죄설이란 무엇인가?

원죄설을 간단히 정의하면, “우리 인간은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약해진 본성과 그대로 두면 범죄하게 되어있는 비뚤어진 성향뿐만 아니라 아담의 죄에 대한 정죄함(유죄선고)도 물려받았다”는 설입니다. 따라서 이에 의하면 선과 악에 관한 우리 개인의 선택함(Choice)에 상관없이 우리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죄인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선하고 의롭게 살아도 존재 자체가 죄의 정죄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나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나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원죄설을 주장하는 한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There is sin in the desire of sin (죄로 끌리는 욕구 자체가 죄이다).
Sin is declared to exist in the being prior to our own consciousness of it (죄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인식이 있기 전에 벌써 죄는 존재한다).
There is guilt in evil desires, even when resisted by the will (나쁜 욕구는 우리의 의지로 물리칠 때에도 그것은 죄이다).
이것에 의하면 우리의 약함, 성향, 죄의 유혹을 느끼는 본성 그 자체가 죄이고 이 죄는 주님이 재림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주기까지 계속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죄 받은 죄인이라는 논리입니다.

원죄설의 문제점

죄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그 자체가 죄라는 개념을 가지게 될 때, 죄는 결코 이길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나니까, 죄가 존재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많은 성경 절과 충돌이 됩니다(고전 6:8~10; 고후 5:10; 갈 5:20,21; 벧전 1:16,17; 계 20:12 등).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정론(Predestination)을 주창했습니다. 각 개인의 구원이나 멸망은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또 이 원죄설을 믿는 이들에겐 유아세례가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왜냐하면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정죄(guilt, 유죄선고)”받은 죄인이니까 빨리 죄를 씻어 없애야지 만일 그 아이가 세례 받지 않고 죽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원죄설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정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성육신하신 예수님도 죄인이 되므로 구세주가 될 수 없으니 카톨릭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카톨릭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태어날 때 원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태어났고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출산했다는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교리를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카톨릭교회는 마리아를 그리스도와 같은 중보자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 원죄설을 받아들인 개신교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무죄 중 출생 대신, 예수님은 아담이 죄짓기 전에 가지고 있던 죄 없는 인간성을 가지고 태어나셨다는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인간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 될 수 없으므로 “성화(Sanctification)”를 중요시하지 않고 죄 사함을 받는 “칭의(Justification)”만을 강조하는 구원론이 등장하게 됐습니다.

바로 이것이 원죄설에 의해 성경의 복음이 왜곡되어온 역사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인간 본성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구주를 받아들이고 회심을 한 후에도 죄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는 원죄설과 잘 부합됩니다. 그래서 이들의 구원론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칭의’에만 포커스를 두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인 성화는 우리의 구원과는 관련이 없는 하나의 부차적인 권고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십계명의 요구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제 효력을 상실했고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소위 도덕률 폐지론적인(antinomianism) 신앙관을 기독교 안에 퍼지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하나님의 계명 준수는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왜 많은 사람이 원죄설을 받아들이고, 예정설을 믿으며, 예수님의 인성이 아담이 죄짓기 전의 본성이라 주장하며, 성화를 배제한 칭의만을 강조한 구원론을 주창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그들에게 왜 율법의 중요성이 상실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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