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7호 제1부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론

제1부 창세기에 기록된 바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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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 … 에서 시작되었으며”(창 10:8~10)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거기엔 죄와 거짓이 없었습니다. 진리만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했습니다. 진리 외에 다른 섞인 것이 없었습니다. 진리만 있던 세상에 사탄은 하늘에서 일으킨 전쟁을 이 땅으로 가져와 인간을 타락시키며 지구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거짓을 퍼트렸습니다. 그 거짓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였습니다. 진리에 대한 곡해는 사탄이 이 지구에 가져온 가장 큰 저주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진리를 잘못 이해하면 정말 어려운 결과를 낳습니다. 인생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영생을 잃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조들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아주 단호하게 대처했습니다.

창세기에는 바벨탑이 등장하며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다니엘서와 신약의 대표적인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에도 바벨론이 등장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에 바벨론에 내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바벨론 가운데서 나오라고 외치는 천사가 등장합니다. 바벨의 뜻은 “혼잡”인데 진리와 오류가 뒤섞여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단체를 상징하는 단어로 성경에서 사용됩니다.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이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뜻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니므롯과 바벨론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창10;1, 6-12)

창세기 10장에는 니므롯이 홍수 후 처음으로 큰 도시들을 건축한 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제일 처음 건설한 사람이 니므롯입니다. 그런데 그는 여호와 앞에서 강한 사냥꾼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었습니다.
니므롯은 시날 땅에 바벨이란 곳을 갖고 있었는데 그곳에 바벨탑이 있었습니다. 니므롯은 전쟁을 통해 많은 곳을 점령했고 거대한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세미라미스의 거짓말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는 니므롯보다 더욱 악한 여자였습니다.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서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죽은 다음에 남편의 영혼이 태양속으로 들어가서 태양신이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때부터 태양신을 섬기는 바벨론의 바알신의 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니므롯이 죽은 상태에서 세미라미스가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미라미스는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태어난 사내아이는 니므롯이 자신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 환생한 존재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니므롯을 신으로 받들었던 백성은 니므롯의 환생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 세미라미스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미라미스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담무스라고 부르는데 담무스는 니므롯이 환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신으로 불려졌습니다. 담무스가 환생한 니므롯이기 때문에 세미라미스는 자기 아들인 담무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신과 어머니 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 신과 아들 신에 대한 이야기는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부활절(Easter)의 유래

그런데 담무스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죽게 됩니다. 세미라미스는 슬퍼한 나머지 전설을 만들었는데 아들 담무스의 영이 지하세계로 들어갔는데 담무스를 위해 애도하며 슬피 울면 매년 봄에 다시 부활해서 살아난다고 가르쳤습니다. 담무스가 부활하여 세미라미스를 만나면 농작물과 초장을 푸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국가적 의식이 되었습니다. 매년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이후에 오는 첫 일요일을 담무스 신의 부활절날로 지켰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 몰래 스며들어오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변했습니다.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Easter는 예수님의 부활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담무스의 어머니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런 여신의 이름들 중 Eostre, Oster, Ishtar 등이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Easter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이 된 하나님의 교회

성경에는 부활절을 지키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의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겔 8:13-15,)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한 것을 설명하며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부활절에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바벨론의 풍습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방종교를 따르며 우상숭배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정확한 청사진과 방법을 보여주신 것이 성소 제도입니다. 성소 제도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를 용서받으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신 제도였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갈 때 앞문으로 똑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로로 가지 않고 벽에 구멍을 뚫어서 옆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입니다. 성전이 더럽혀졌습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가야 하는 성소 안에서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해 애곡했습니다. 바벨론에서부터 흘러내려온 오류와 진리가 뒤섞여 교회가 바벨론이 되어있는 상태를 설명한 것입니다.

니므롯과 그의 부인 세미라미스가 가르친 거짓사상은 오늘날 기독교까지 계속 흘러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진리를 반대하고 오류의 기반이 되는 바벨론 사상을 갖게 된 것은 사실 고대 바벨론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중세기의 교황권을 통해서 성경에 없는 바벨론의 가르침이 기독교에 접목된 후에 그것이 씨를 뿌린 후 오랫동안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서 나왔지만 바벨론에서 유래된 거짓 교리가 아직까지 개신교 안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바벨론이란 뜻은 ‘혼잡하다. 섞였다’입니다. 진리와 오류가 섞인 제일 처음 시작이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단체에 대한 상징으로 바벨론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찾는 하나님의 백성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온다는 것은 바벨론의 오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구원관과 하나님의 구원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1~9)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가득 찬 죄악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통해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은 홍수에 대비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않고 자기의 행함과 공로를 통해 무엇을 쌓아서 심판을 피하려는 정신이 바벨탑을 쌓은 정신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는 물론이고 기독교 안에도 많은 사람이 아직도 행함과 공로로 자기들을 구원하려고 하는 자기 계발의 신앙을 믿고 전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고 기록합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6)
우리의 구원은 창조에 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한 후 제 칠일에 쉬셨다고 하시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므로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에 있습니다. 깨끗하게 된 마음에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 인간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에게 재창조해 주심으로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구원의 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공로를 쌓아서 행함으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바벨론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성소제도는 그런 가르침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양을 잡아서 제사드릴 때 죄인들의 죄가 양에게 전가되고 그 흘린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서 뿌리는 일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소제도는 바벨론의 구원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배격하면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창조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새로운 마음을 창조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해주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무엇을 행했기 때문에 바뀌거나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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