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6호 의의 옷을 입으려면…

[신앙간증] 의의 옷을 입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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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진리를 만나게 된 것은 약 3년 전입니다. 지인으로부터 안식일이 진리임을 깨달아 더 이상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교회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전 교회에서 출애굽기를 공부하고 있어 안식일이 언제인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왜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지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예배를 드립니다”. 어떤 날이 참 안식일인지 알고 싶어 안식일에 관계된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안식일은 일곱 번째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교회를 정리하고 열한시 선교센터에서 전하는 말씀을 듣는 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너무나도 다른 곳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하기에 오히려 더러운 내가 위로 받는 곳!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마음 따뜻한 곳! 그런 분들과 함께 안식일을 지내면서 예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손목사님의 송곳같이 예리한 성경해석과 강목사님의 풍부한 말씀 해석에 이전에는 잘 몰랐던 성경 말씀이 마치 일렬로 늘어선 영화의 필름처럼 모든 장면이 연관성을 갖고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히 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 충만한 설교 말씀을 마치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목사님께서 간절한 기도를 하시는데 차마 “아멘!”이라고 화답하지 못하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 저의 이중성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아는 척하면 하나님께서 알고도 안 했다고 하실까 봐 애써 모른 척했는데 그때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제야 저의 진심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주님, 저의 기도가 진심이 되게 해주시고 그 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만 되풀이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때다 싶으셨을까요? 세상 죄의 모든 원흉이 저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장소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빛과 너무 멀어서 빛이 갈래야 갈 수 없는 곳이고, 또 한 곳은 빛과 가까이 있지만 그 빛을 마주하고 서 있는 물체가 있어 그 뒤에 생기는 그림자에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빛과 가까운 어둠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진리를 듣고 알게 되어 빛 안으로 들어와 주님과 거리상으로는 가깝게 있었지만 죄로 물든 내 자아가 우뚝 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치 제 발로 주님의 제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지 못했던 가롯 유다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길을 묻고 재물을 포기 못해 근심하며 세상으로 돌아가는 부자 관원이 저의 모습 같았고 ‘진리를 전하고 돌이켜 버림을 당하지 말라’는 경고의 주인공이 마치 저를 두고 하는 말씀인 듯했습니다. 더욱이 사탄의 정신에 물들어 하나님을 대항하여 마주 서는 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옥불로 태워져 소멸될까 두려운 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보고 주님을 끝까지 문밖에 세워 둘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를 하도록 주님은 저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주님, 혹시 제가 알곡이 되지 못하고 다른 영혼들을 경각시키는 용도로 존재하여 결국 불에 태워져 없어져도 주님, 이들과 함께 이 길을 가게 해주세요”.

그 후로 주변의 형제자매님들과 교제를 나누며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감동하고 집에 돌아와 금세 까먹기를 반복하긴 했으나 분명히 “주님께 의지했을 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뭐랄까, 죄를 승리했을 때 주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는 정말이지 먹어보진 못했지만 꿀 송이가 있다면 아마 이 맛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사탄 역시 죽을힘을 다해 더 먹음직한 것들로 유혹을 해 왔고 뭔가에 홀린 듯 눈을 감고 넘어지는 제 모습이 또 발견되었습니다. 또 한번 주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왜 나는 항상 느끼기만 하는 걸까? 진심에서 우러나는 행동은 왜 하지 않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에 대해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음을……..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겠다는 각오로 작년 3월에 일본인 아내와 일본이라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직 한가지 기도만 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저의 기도가 진심이 되게 해주시고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리게 해주세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할렐루야!! 이 간절한 저의 기도는 응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들을 통해 저를 깎고 다듬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몇 번 넘어지긴 했지만 예전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말라비틀어진 먼지만 날리는 듯했던 마음이 물기를 머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나님께 전부를 내어 드리기 전에 제 안에 가지고 있던 죄성을 밝히시고 하나씩 하나씩 잘라내는 은혜를 경험케 하고 계십니다. 예전 그 어느 때보다 주님만 바라보라며 저의 눈을 고정시키십니다. 저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한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전혀 아프지 않을 것 같은 평안함…

이제는 눈을 감고 스스로 넘어지는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게 기쁘고 좋습니다. 이제야 쉼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 넘치는 주님의 눈을 마주 보면서 주님의 손에 못을 박고 주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러 넣는 짓은 정말이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못하겠습니다. 이제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선 나의 더러운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옷은 빨래하는 동안 갈아입을 여벌이 없는 단벌이라는 것을, 옷을 빨기 위해서는 부끄럽지만 주님을 의지해 담대히 벌거벗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의의 옷을 입혀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젠 옷이 조금이라도 더러워질 것 같으면 더욱 간절히 주님을 바라봅니다. 이제는 “저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라는 기도에 온 마음 다해 “아~멘!!”이라 화답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자상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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