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5호 제2부 나사렛 회당에 서신 예수님

제2부 나사렛 회당에 서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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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낭독하신 예수님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

이사야 61장 1절에서 3절 예언은 메시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인을 위해서 행하실 사역에 대해 미리 예언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는 표현은 “나로 하여금 메시아 되게 하사”라는 뜻입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히브리 말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을 헬라어로 하면 “그리스도”가 됩니다. 그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는 표현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예언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나사렛, 당신의 고향 회당에 가셔서 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읽으시는 장면이 누가복음 4장에 나옵니다.

눅 4:18-21,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나사렛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라나는 것을 봐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30세가 넘으시고 랍비가 되셔서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을 세워 말씀을 듣는 자리를 만든 것입니다. 외부에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이 들려오던 때였기 때문에 그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지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사야서 61장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이사야서 61장 1절과 2절은 메시아를 예언하는 구절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절 중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사 61:2)한다는 구절은 유대인들이 전율할 정도로 좋아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신원”이라는 말은 “원수를 갚는다”, “복수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속하는 로마에서 해방시켜주시고 원수를 갚아주시길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61장 2절의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한다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크게 “아멘”하며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할 때마다 속 시원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기뻐하며 읽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 61장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실 때 메시아의 사역에 관한 마지막 설명을 생략하신 것입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을 낭독하신 후에 이어지는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사 61:2)한다는 구절을 생략하시고 책을 덮은 후 내려오셨습니다. 이런 일은 유대인들이 이사야 61장을 봉독하며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으며 그런 예수님의 행동은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그 당시에 유대교회에서 잘못 가르치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메시아와 관련된 신학을 예수님께서 정면으로 도전하신 순간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다 주목하여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너무 이상하여 그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쳐다본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당신을 주시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사야 61장의 예언이 그들의 눈 앞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예수님께서 그들을 구하러 온 “메시아”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인들
나사렛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은 갑자기 그들 자신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을 강론하신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 생각하도록 촉구받았습니다. 그들, 곧 아브라함의 자녀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의 권세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죄수요, 흑암 가운데서 진리의 빛을 필요로 하는 자들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손상을 입었으며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역은 그들이 바라는 것과는 전혀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의 행실이 너무도 치밀하게 조사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외면적 의식에는 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통찰력 있는, 꿰뚫는 시선에 의하여 검사 받는 것을 겁냈습니다.

이 예수님은 누구인가? 라고 그들은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는 말로 그들의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메시아의 영광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주장한 자는 목수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 요셉과 함께 일하던 자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수고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분의 형제자매들과 잘 아는 사이였으며 그분의 생애와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유년에서 청소년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생애가 비록 흠이 없었지만 그들은 그분을 약속된 자로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장로에게서 들었던 그것과는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원의 날을 전파”한다는 구절을 생략하심으로 로마의 압제에서 그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그들의 오랜 기대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로마로부터 구원하여 내시겠다는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에 대한 말을 들었으므로 그분의 능력이 그들의 유익을 위해 행사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목적의 아무런 암시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방인들에게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그들이 이방인에게 주기를 거절하던 그 자비를 가장 깊이 필요로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그들 중에 서셨던 그 날은 하늘의 부름을 받아들일 그들의 기회였습니다. “인애를 기뻐하”(미 7:18)시는 그분은 그들의 죄가 초래한 멸망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기를 열망하셨습니다. 구약의 성경절들은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일체의 내용을 명백히 기술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선지자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정직하게 상고하고 그들의 이론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시험해 보았더라면 예수님께서 그들의 완고함 때문에 우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5)고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잘못된 것과 자신들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마음에 한번 품은 불신은 나사렛 사람들을 계속 지배했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불신은 산헤드린과 국가를 지배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있어서 성령의 능력의 증거에 대한 첫 거절은 곧 종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의 최초의 반항이 정당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트집을 잡았습니다. 성령에 대한 그들의 거역은 갈보리의 십자가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따라 민족이 흩어진 일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임한 “신원의 날”
이사야 61장 2절에 나온 “신원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인데 메시아가 왔을 때 그 메시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아니할 때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심판과 진노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메시아가 와서 죄인들을 죄에서 구속하기 위한 “은혜의 해”를 전파하십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지 아니하고 메시아를 거절하면 결국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신원의 날”입니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성이 멸망하면서 “신원의 날”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거절하고 받지 아니하자 그 나라와 그 교회가 망했습니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 복음을 받지 않은 이유는 그 당시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신학과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이야기들이 왜 잘못되었는지 조차도 알지못하고 그냥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눈 먼 순종이며, 맹종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 명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예루살렘 주위에 십자가가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그 사이로 걸어 가기가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참혹하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경험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기로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진리는 그리스도의 시대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진리는 현시대에도 인기가 없습니다. 사탄이 최초에 자기를 하나님처럼 높일 수 있다는 거짓말을 제시함으로 진리에 대한 혐오감을 사람에게 심어 준 이래로 진리는 인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지 않은 이론과 교훈에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마치 유대인들이 그들의 유전에 대하여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이론과 교훈에 집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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