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5호 제1부 존 웨슬리의 거듭남과 그가 전한 복음 – 총주제: 은혜의 해

제1부 존 웨슬리의 거듭남과 그가 전한 복음 – 총주제: 은혜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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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존 웨슬리의 거듭남과 그가 전한 복음

존 웨슬리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종교 개혁자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분의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진리에 대한 용감성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큰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분은 성품이 참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특히 그분은 중세시대에 왜곡된 복음을 성경말씀으로 개혁한 분입니다. 존 웨슬리가 어떻게 거듭나게 되었으며 그분의 복음에 대한 가르침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합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선 존 웨슬리와 모라비아 교인들

존 웨슬리가 성공회 사제가 된 다음에 2년동안 선교사 일을 하기 위해서 미국 조지아 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인디언들과 불우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2년동안 일하게 되어 조지아 주로 가는 시몬즈 호 배에 탑승했습니다. 장장 4개월 23일 간 계속된 항해에서 시몬즈 호는 몇 번이나 전복될 뻔했습니다. 바닷물이 객실 창을 부수고 돛대까지 부러뜨릴 정도였습니다. 위기의 순간 웨슬리를 포함한 영국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속에서 모라비안 교인들 한 그룹이 갑판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그들의 얼굴 속에 평안이 있었습니다. 침착한 모라비아 교인들의 모습은 웨슬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웨슬리는 이들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물었고, 이들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저 사람들은 나와 똑 같은 그리스도인인데, 나도 주님을 알고 저들도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인데 어떻게 나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난 죽음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지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몬즈 호는 우여곡절 끝에 1736년 2월 6일 조지아에 상륙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곳에서 2년동안 선교생활을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큰 실패를 맛보고 그의 마음 가운데 열심히 전도한 전도사역의 열매가 없음을 탄식하면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존 웨슬리가 후회한 답변
존 웨슬리는 모라비아 교인들의 지도자인 스팡겐베르크(August Spangenberg)와 깊은 교제를 나누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스팡겐베르크와 웨슬리가 나눈 대화는 유명합니다. 어느 날 스팡겐베르크는 웨슬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는 “당신 안에 증인을 갖고 있는가?”였고, 둘째는,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당신 영과 더불어 증언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웨슬리는 느닷없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있었고, 그때 다시 스팡겐베르크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 웨슬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 세상의 구주이심을 압니다.” 스팡겐베르크는 재차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로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웨슬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저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기를 바랍니다.”

웨슬리는 이 날의 대화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자신의 일기에 그저 “의미 없이 내뱉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웨슬리는 이 대화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스팡겐베르크와 모라비아 교인들이 보였던 믿음의 확신에 감탄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자연스레 모라비아 교인들과 스팡겐베르크에 끌리게 되었으며 믿음의 확신을 얻기까지 계속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거듭남의 경험을 한 존 웨슬리
한번은 웨슬리가 모라비아 교인들의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기도회 장소에 도착한 웨슬리는 뒷자리에 앉아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6장 8-9절에 “그분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불신앙은 모든 죄의 근원이며 뿌리이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마지막 구절을 읽는 소리를 듣는 순간 웨슬리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존 웨슬리가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고 회심한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날 저녁에 일어난 일을 다음과 깉이 일기에 썼습니다.

“저녁에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기도회에 참석하였는데 거기에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8시 45분 경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존 웨슬리의 복음에 대한 가르침
그 후에 존 웨슬리는 “예수님은 나를 내 죄에서 구원하여 주신 나의 구세주”인 것을 강조하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구원의 경험 속에 성화를 포함시켰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시대에 왜곡된 복음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도 성화에 대해서 강조는 했지만 성화를 구원에 포함시키기를 상당히 꺼려했고 그 당시까지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런 분위기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 때 존 웨슬리는 가장 용감하게 “성화의 경험이 없는 자는 구원의 경험이 없는 것이고, 성화의 경험과 죄를 승리하는 경험과 내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을 이겨서 승리해서 죄 없는 생활을 살 수 있는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로 성령께서 그의 마음가운데 거하시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라고 전했습니다. 가장 힘있게, 가장 확신을 가지고 성화에 대해 이야기한 종교개혁자가 존 웨슬리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화는 죄에 대한 승리와 성품의 변화를 수반하는 거룩한 경험이라고 강조하며, 성화의 열매 없이, 성화의 경험이 없이, 죄를 승리하고 이기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은 구원의 경험이 없는 것이다.” 라고 강력히 얘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성품의 온전함에 이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계명을 지킬 수 있다.” 라고 말한 첫번째 종교개혁자가 바로 존 웨슬리입니다. 그는 복음을 온전하게 완성시킨 사람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의 복음이 개혁되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 여전히 성경의 진짜 복음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성공회 사제들은 존 웨슬리의 깨달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교회에서 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로 이미 우린 구원받았는데 무슨 구원받는 단계가 있고 무슨 열매가 있는가? 성화의 열매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성화의 경험을 하고 안하고, 내가 죄를 그치고 그치지 않는 것과 나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것이 그 당시 개신교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가 성화를 강조하며 죄에 대한 승리를 강조할 때 그것이 참된 복음이고 그것이 복음의 체험이고 그 체험이 없는 자는 사실은 참된 믿음과 구원의 경험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할 때 교회에서 그를 조롱하면서 “methodist” 즉 “방법론자”라고 야유했습니다. 나중에 그 단어가 감리교회(methodist)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존 웨슬리가 당한 어려움
존 웨슬리의 자서전은 웨슬리의 친구가 썼습니다. 그 자서전에는 웨슬리에 대해 충격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웨슬리의 아내는 유명한 악처였는데 한번은 그녀가 웨슬리의 등에 올라타서 그의 머리를 쥐어 뜯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서전에는 그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웨슬리가 부흥회나 전도집회만 다녀오면 그의 아내는 그곳에서 어떤 여자와 눈 마주쳤냐면서 의심하고 괴롭혔습니다. 웨슬리의 아내는 의부증이 있어서 그가 사는 동안 아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밖에도 웨슬리는 집회를 다니면서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의 생애 가운데 많은 시련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 가운데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통해서 우리가 타고난 죄의 본성과 외부에서 오는 모든 죄의 유혹과 공격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을 받은 열매요, 증거입니다.” 라고 증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성화는 죄에 대한 승리와 성품에 변화를 수반하는 거룩한 경험이 되어야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의 후예들은 더 이상 그렇게 믿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 그 표준이 점점 내려가며 거기에 대한 강조점이 흐려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점점 더 원만한 빛으로 밝은 빛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거기에서 오히려 다시 뒷걸음질 치면서 과거의 잘못된 신학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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