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3호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나니

[부모와 자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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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나니까”

얼마 전, 기숙사 생활을 하는 딸이 추석 연휴로 집에 와 있을 때였습니다. 연휴가 수요일에 끝나기 때문에 수요일 저녁 11시까지 기숙사로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수업을 하시는 교수님께서 갑자기 출장을 가시게 되어서 목요일 수업이 모두 휴강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5박 6일로 신청해 두었던 외박을 6박 7일로 재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연휴가 끝나는 수요일 밤 11시쯤, 갑자기 기숙사 사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변경된 외박 일정을 확인하지 못하셨는지 점호 시간에 자리에 없는 딸아이를 확인하시고 놀라서 전화하신 모양입니다.

사감 선생님과 전화를 끝내고 돌아온 딸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엄마, 처음에는 사감 선생님이 좀 어려웠어요. 예쁘시긴 한데, 날카로운 인상 때문인지 깐깐하고 엄하실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내보니까 너무 좋으셔요. 우리가 인사하면 일일이 반갑게 맞아 주시고, 무거운 책이나 짐을 들고 끙끙거리는 것을 보시면, 멀리서도 달려와서 도와주시곤 해요. 엄마 같은 기분이에요. 처음에는 사감 선생님께 전화가 오면 뭐 잘못한 게 있나 하고 무섭고 어렵기만 했는데, 이제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나니까 이렇게 갑자기 전화가 와도 아무렇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딸이 기숙사에 처음 들어가던 날이 기억났습니다. 짐을 다 옮기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망설이다가 복도에서 딸을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그때, 몇 걸음 옆에 계시던 어떤 여자분이 충분히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아이고~” 하시면서 우리 둘을 쳐다보셨는데, 그 눈빛과 인상이 참 다정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때는 그분이 누구신지 정확히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자 기숙사 사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 우리 딸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나니까 비로소 좋아하게 되었구나. 정말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네가 사감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면 그분을 끔찍이 사랑하게 될 거야.’
그러나 사춘기 딸은 이미 내 말 한마디에 내가 하고 싶던 말까지도 다 알아들었을 것이기에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 딸이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게 될 날이 오겠지요? 이렇게 선생님을 좋아하고 의지하게 된 것처럼요. 그날이 오기까지 최선을 다하실 주님이시기에 감사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2>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하면서 자주 생각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가정 예배 시간에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은 두려워 떨면서 서 있었습니다. 감히 눈을 들어 구주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칠게 여인을 취급하던 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가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 희망에 찬 말씀이 들렸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녹아내렸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흐느껴 울면서 뜨거운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가장 신실히 따르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음성과 말투, 표정과 태도가 어떠했을까요? 세상은 이 여인에게 멸시와 조롱, 비난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들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보였더라면 사랑스런 아이들은 내 품에 안겨서 뜨거운 눈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였겠지요? 두 해 전 일입니다. 어떤 일로 꾸중을 듣게 된 막내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또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네. 정말 싫어요.” 그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딸은 분명히 잘못을 했고 그로 인해 꾸중을 듣는 상황이었는데, 잘못했다는 대답을 기다리는 내게 너무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그 말은 제 가슴 속 깊이 꽂혀서 계속 뇌리에 맴돌았습니다. 내 표정으로 인해 딸은 이미 마음이 상하였고 그로 인해 엄마가 하는 어떤 가르침도 귀에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나의 모습이 그 여인을 대하셨던 주님의 모습과 같았다면 어땠을까요?

단호한 가르침이지만 친절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부모들에게 필요합니다. 화가 나서 좋지 않은 감정이 올라올 때에는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마음 상태로 회복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실수와 잘못을 한 아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되고 민망함과 죄책감, 혼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어려운 그 심정이 긍휼히 여겨지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게 되면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당부가 효과적일 수 있는 표정과 말투가 저절로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닐까요?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하도록 친절하게 요청하는 대신에 꾸짖는 말투로 명령하고, 동시에 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비난과 책망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들의 이러한 태도는 자녀들의 명랑함과 의욕을 소멸시켜 버립니다. 아이들은 좋아서가 아니라 달리 피할 길이 없기 때문에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키는 일들을 합니다. 그것은 즐거움이 되기보다는 고역이 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부모들의 충고를 따르는 일을 자주 잊어버리게 되고,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여 한층 더 어려운 상황을 가져옵니다. 자녀들의 흠을 찾는 일이 반복되고, 그들이 좌절감으로 압도될 때까지 그들의 나쁜 행동들이 생생하게 그들 앞에 나열됩니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며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가정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정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서 찾게 됩니다. 그들은 거리의 친구들과 섞이게 되어 가장 안 좋은 상황에 이르기까지 타락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의 큰 죄는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할까요? 가정이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애정을 나타내고 친절하게 그들에게 할 일을 찾아 주었다면, 부모들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사랑으로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면,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므로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손과 발과 마음은 기꺼이 부모들에게 순종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아를 굴복함으로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하고, 자녀들이 옳은 일을 하고자 애를 쓸 때 그들을 칭찬해 줌으로써 부모들은 그들의 노력을 격려해 주고 그들을 매우 행복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갖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고, 명랑한 햇빛이 가정 안에 감돌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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