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2호 주님의 다시 오심 그것만이 저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손계문 목사 칼럼

주님의 다시 오심 그것만이 저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손계문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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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을 기다림
여러분은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고 행복한 적이 있었나요? 저는 아내와 연애할 때 기다림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한지 경험했습니다.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짜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더군요~ 빨리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데, 시간은 너무 더디 가서 기다리기 힘들지만, 그래도 결국은 만날 것을 알기에 그 기다림이 즐겁고 기분 좋더라구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요? 처음엔 설레며 기다려지던 예수님의 재림이 더디 오시는 것 같고 지체되면 될수록, 우리의 기다림과 간절함이 시들시들해지더니 ‘내 살아생전엔 안 오셨으면 좋겠다’하는 심정으로 바뀌어 가지는 않는지요? 어떻게 하면 천년을 하루같은(벧후 3:8)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요?
내일은 과거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날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살아가면 늘 새로운 날이 됩니다.

매일 아침 나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 부활했고, 나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새롭게 재창조 받아 오늘 하루를 살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게 새롭게 주어진 날이기 때문에 새로운 헌신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야 하므로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와 교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루만을 살 뿐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틀을 한 번에 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12시간만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내일 우리가 살아있을지, 않을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다림과 준비의 시간은 늘 하루 단위이지요. 늘 가깝고 늘 짧은 것입니다. 매너리즘과 타성에 젖을 이유도 시간도 없지요. 사람은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열심을 내게 되는데 오늘은 어제와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재림은 너무 가깝고 준비할 시간도 오늘 하루밖에 없으므로 너무 짧은 것입니다.

아침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칩시다. 단 하루만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치 그날이 지상에서의 마지막인 것처럼 그 시간 동안에 주님을 사랑하며 살도록 합시다. 우리의 모든 계획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주님의 섭리가 지시하는 대로 수행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면서, 우리의 이기적인 계획과 의도 대신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뢰의 생애를 살도록 합시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귀한 하루, 그렇게 충성스럽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고 곧 그분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복된 소식은 전해져야 합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오늘날의 기독교를 다시 회복시킬 방법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식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하게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정신을 차릴 방법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식입니다.

처음 신앙의 감동과 감격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세상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형제들의 티가 눈에 자꾸 보이십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이 복음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주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대답했는데, 이 말은 그때 이후 지금까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옥중에서, 화형대에서, 교수대에서 그들은 비록 살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했지만, 재림 시에 부활할 것을 확신하였으므로,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것을 초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할 것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사”, “거룩한 나라에 인도하여 들이실 때”를 바라보았습니다. 왈덴스인들도 똑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클리프는 구주의 나타나심을 교회의 유일한 희망으로 바라고 사모했습니다. 지금도 교회의 유일한 희망은 구주의 재림뿐입니다.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심판의 날이 앞으로 3백 년이 못 되어서 올 것으로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악한 세상을 더 이상 오래 참지 않으실 것이며, 참을 수도 없으실 것이다. 이 가증한 나라가 전복될 큰 날이 다가오고 있다.”

멜란히톤은 “이 낡은 세상은 그 끝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고, 칼빈은 “그리스도의 오시는 날을 모든 사건들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으로 주저하지 말고 고대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건들 중에서 가장 기쁜 사건으로 주저하지 말고 고대하라!” 여러분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장 기쁜 사건인가요? 그날을 고대하고 있습니까? 고대한다는 말은 몹시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기쁜 사건이 뭡니까?”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우리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의 재림 외에는 다른 소망이 없습니다. 칼빈은 계속 얘기합니다. “모든 충실한 가족들은 그날을 고대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완전히 나타내시는 그 큰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볼 때까지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명상하기를 주린 것처럼 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주린 것처럼 사모하십시오! 재림에 대하여 배고파야 합니다. 우리 대화의 주제가, 내 생각의 주제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거 한 가지는 확실하더군요. “예수님의 재림이 있긴 있는데 지금은 아니고 언젠가는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삶 속에서 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말 연약한 인간인지라 종말적 긴장을 놓쳐버리면 금세 눈이 딴 데로 돌아가 버립니다. 적당히 타협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이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면 죄가 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싶으시죠?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고 싶으시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인식을 가지십시오!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긴장감을 회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삶에 변화와 개혁이 이를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녹스는 말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하늘로 가지 않으셨는가? 그리고 다시 오실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께서 돌아오시되 속히 돌아오실 것을 믿는다.”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린 리들리(Ridley)와 래티머(Latimer)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리들리는 기록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믿고 있으므로 말한다. 세상은 확실히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 요한처럼 충심으로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향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박스터(Baxter)는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생각은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고, 그 복된 소망을 바라보는 것이 성도들의 특성이요 믿음이다. 우리는 사망이 완전히 정복당하게 될 그리스도의 재림을 참으로 열렬하게 바라고 그 일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날은 마땅히 모든 신자들이 사모하고 바라고 기다려야 할 날이다. 왜냐하면 그날은 그들의 구속을 위한 모든 사역과 그들의 영혼의 모든 소원과 노력이 성취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 주여 그 복된 날이 속히 이르게 하소서.”

초대교회 사도 시대부터 핍박을 받는 광야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이었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 그것만이 저의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세상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일을 위해 태어났고, 주님의 재림을 전하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소망입니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함께 꿈꾸기를 바랍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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