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32호 제3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제3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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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착한 사람 증후군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아시는지요?
많은 사람이 착한 사람 증후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먼저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 것이 없고 늘 예의 바른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왔으며 지금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이 착한 사람 증후군에 해당하는 경우의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싫으면서도 싫어하는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먼저 해결해 주기 위해 자신의 일을 미루기도 하지요. 작은 것에도 양보하기 위해 노력하며 앞에서는 비판을 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자신에 대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항상 초점이 맞춰져 있고,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희생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타인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사과합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과 갈등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타인의 요구에 순종적으로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먼저 용서를 구하며 규칙을 지키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 보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필자 또한 과거에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사람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의 문제는 정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고 책임지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상대방이 오해해서 생긴 일에도 자신의 부족으로 돌리는 그 태도가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해도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희생으로도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 분노하게 되거나, 속병이 생기게 됩니다. 진정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여전히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본인은 옳고 억울한 것입니다. 이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부부간의 문제, 부모 자식과의 문제, 교회에서 문제, 사업상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싸움을 피하고 싶고, 논쟁을 피하고 싶고 그래서 대신 매를 맞는 당신은 참 착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기만하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맙니다. 즉 자기가 정말 의로운 사람인 줄 착각하여 자기를 불쌍히 여기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 겉으로는 분명 다 책임지고 매를 다 맞았는데, 속으로는 원망과 억울함과 분노가 영혼을 갉아먹게 됩니다.

착한 그리스도인들이시여, 자기의 영혼이 얼마나 속절없는지 진짜 모습을 주님 앞에서 낱낱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을 덮고 있는 기만에서 눈을 뜨고 “착한 사람”이라는 가짜 외투 속에 숨겨놓은 자신을 보어야 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는 말은 마음속에 무엇이 존재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말은 그 사람의 성품을 꼴 짓습니다. 즉 말은 그 사람의 성품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다시 그 사람의 성품에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그 말에 자기의 성품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실이 아닌 것들을 반복해서 계속 말하게 될 때, 결국에 가서는 그것을 진짜 사실처럼 믿게 되며, 혼돈 가운데서 자기기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로 영향을 받는다. 때때로 사탄의 자극을 받아 순간적인 충동 아래서 그들은 시기나 악한 억측의 말을 발하게 되며, 자신들이 진정으로 믿지 않는 바를 마치 진정으로 믿는 것처럼 표현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사상에 반응을 일으킨다. 그들은 저희가 한 말에 스스로 속게 되며, 사탄의 선동을 받아 말한 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일단 어떤 의견이나 결정을 발표한 후에 그들은 흔히 너무 교만하여 그것을 철회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옳은 것을 증명하려고 힘쓰다가 마침내 저희가 정당하다고 믿게 된다”(오 그리스도 33장 내 형제는 누구인가? ).

처음엔 사탄의 충동을 받아서 시기나 악한 억측을 얘기했는데, 결국에는 어느 것이 거짓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가를 스스로가 혼동하게 되어서, 사실과는 상관이 없는 자신의 상상을 실제적인 진실로 믿게 되는 묘한 상황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기만 가운데로 들어가게 될 때,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기만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기만 가운데서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게 됩니다.

어떻게 우리들에게 이러한 자기기만의 비극들이 생기게 될까요? 우리들의 점차적인 결정들에 의해서 우리는 그러한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점차적인 결정! 아무도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겠다고 즉각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빛을 조금씩 거절하고 죄를 약간씩 감싸 안으면서 점차적으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들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나들면서 사귀는 것이 별로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결정함으로써 점차적인 결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결정 또한 점차적인 결정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결정, 희생이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자신을 섬기기로 하는 한 두 번의 결정, 이것 또한 매우 위험한 길로 접어드는 결정이 될 것입니다. 날마다 생애에서 말씀과 기도를 등한히 하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결정, 이것 역시 자신의 영혼을 점차적으로 죽음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와 영원한 복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생애에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께 굴복하고 순간순간 주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점차적인 타협과 자기기만의 늪을 찾아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2. 피해의식

자기기만의 또 하나의 형태는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누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면 그것을 의견으로 생각지 않고 공격으로 생각하지요. ‘대화할 때 저 사람이 나한테 얼굴을 찡그리고 얘기했어. 뭔가 잘못됐을 거야.’ ‘회의할 때, 내 의견을 반대했어. 나를 무시하는 거야’ ‘저 사람이 복도를 지나가다 나한테 미소 안 지었어. 뭔가 문제가 있어.’ ‘저 사람이 저런 행동을 한 것은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의 동기를 의심하고, 자기를 피해자로 만들며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적이 없는데도 자기를 불쌍하게 만들어 자기연민에 빠집니다. 그런 피해의식은 피해망상으로 발전해 갑니다. 기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망상 아닙니까! 피해의식으로 자기를 기만하면, 분명히 사실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시정되지 않습니다.

피해망상의 사전적 정의
피해망상: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조건만 잘못되어 있고, 그 이후의 논리 전개에는 별 무리가 없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전제조건 자체가 망상적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며 그 망상 전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가 많다.… 자신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며 과하면 그 마음이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시달리고 있거나 속았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그릇된 망상이 전제조건이 되고, 그 다음의 논리 전개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우에 이런 실수와 죄를 저지르는지요~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잘못 생각한 후에, 마치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3. 치료방법

인간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비판, 분노, 시기, 질투는 증상일 뿐이지 문제가 아닙니다. 그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은혜로 속마음이 충만히 채워져 있지 않고 비어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기를 가져다가 나를 채우려고 하다 보니 비판, 분노, 시기, 질투를 하게 됩니다.

요즘은 자존감이 화두인 시대입니다. 성공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마치 모든 것을 극복하게 만드는 내적인 힘인 것처럼 자존감에 관련된 책이 베스트셀러인가 하면 자존감 높이는 강의 또한 유튜브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다른 개념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 개인의 것입니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지만 자존심은 나와 다른 사람이 관계된 것입니다. 즉 자신을 귀히 여겨 다른 사람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 소속된 집단으로부터 자기의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인정해주고 좋아해 줘야 만족하게 되고 인정받지 못했을 때 분노가 표출되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쉽게 당혹해하고 오해하며 자기 비하와 열등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즉 자신을 인정받으려 하는 자존심이 강해지게 됩니다.

이것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고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여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보아야 합니다. 내 모습을 보여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감히 고개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할 수도 없는 속절없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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