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9호 세 번 채에 거르고 말하라

[둘이 하나 부부일기] 세 번 채에 거르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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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요양병원에서 만난 남편과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며 결혼을 약속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니던 요양병원은 뒤로는 아담한 산이 있었고 앞으로는 남해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같은 직장에 다녔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푸른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병원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남편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결점들을 덮어주는 무덤이 되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의 결점들을 묻어주는 무덤이 되어야 한다고 해요. 나는 당신의 영원한 무덤이 되겠습니다.”

그 날 남편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착하고 다정한 남편의 고백이 그저 고맙고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서로의 무덤이 된다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고, 작은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는 8:20까지 학교에 출근해야 했고, 남편은 8:30까지 사무실에 가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학교가 사무실 가는 중간에 있었기에 아이 둘과 저희 부부는 매일 아침 8시15분쯤 집을 나섰습니다. 모두 가까운 거리였기에 크게 늦는 일은 없었지만 가족 모두 시간을 맞추어 나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번씩 준비물을 두고 왔다며 아이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오기도 했고, 아침 식사 뒷마무리가 늦어져서 제가 다른 식구들을 기다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고작해야 2-3분 늦을 뿐인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 늦는 것이 질색인 저로서는 시험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꽃샘추위에 코끝이 시린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먼저 나와서 차 안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빠듯한 상황이었기에 조금씩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여보, 어서 오세요!” 그러나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벌써 조금 늦었는데 왜 이렇게 오지 않는 거지?’ 속에서 점점 뭔가 올라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 저 멀리에서 이것저것 두 손 가득 들고서 나오는 신랑이 보였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래, 이제라도 가면 그리 늦지는 않아’ 속으로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만, 서두르는 기색 없이 천천히 걸어오는 남편의 모습에 기어코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오늘 자전거 타고 가세요.” 영하 5도의 꽃샘추위에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투정이란 말입니까? 그것도 기름기 없이 바짝 마른 신랑을…

그 말을 내뱉는 동시에 이미 내 마음은 후회와 자책이 시작되었습니다. 쏟아진 물을 담을 수 없듯이 말이란 그런 것인데 이런 어리석은 자여! 뒤늦은 후회로 신랑과 눈도 마주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앞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 이런 상황에서 침묵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던 남편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부터 당신이 걸어가, 그럼 다 해결 되잖아. 이렇게 추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가라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리고 연이어서 “어제 저녁 예배 때 생각 안 나? 세 번 채에 거르고 말하라는 글까지 읽어 놓고는…”

그 순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일단 체에 걸러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습니다. 늘 혀가 실수를 하니까요. 마음 한편에서는 ‘네 신랑도 잘한 것 없어. 너만 잘못한 거 아니야. 조금만 서두르면 될 텐데 뻔히 밖에서 기다리는 줄 알면서… 피장파장인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 뭐지? 아침 식탁에서 그 좋았던 분위기는 어디 간 거야?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 그저 아, 미안! 하는 사과 한마디 듣고 싶었던 건데…’

한심하고 민망하고 슬펐습니다. 늘 노래하고 조잘대던 아이들도 조용해졌습니다. 드물게 있는 엄마 아빠의 험악한 분위기에 눈치만 보는 것 같았습니다. 2-3분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음속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큰일에는 잘 넘어가는 편인데, 정작 넘어지는 부분은 이런 별 것 아닌 일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은데….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릴 것 같아. 화해를 해야 하는데…’ 그런데, 정말이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때, 운전 중이던 남편이 갑자기 “기분이 나쁜가?”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어렵게 말을 걸었는데 뾰루통하게 있으면 안 되겠지 싶어서 그냥 웃었습니다. 웃긴 웃었지만 하늘의 마음이 아직 내 속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제야 한숨을 깊게 쉬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그냥 맘이 풀리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참으로 슬펐습니다. 서로의 잘못을 가릴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인걸…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위해, 그리고 그를 위해 서로를 엮어 주셨는데 섬기며 가야지…그도 아프고 힘든 사람이야 라는 생각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조금 늦으면 그만인데, 그로 인해 시간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중한 울 신랑 맘 상하게 했네’라는 생각이 연이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저 한 사람을 위함인데, 같이 성령을 구해주며 함께 주님을 증거하고 죽고 살아야 할 내 형제인데,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먼저 애교 부려줘서 고마운 울 신랑…고맙습니다. 담에도 또 그렇게 해주기를…

“당신이 인내력과 자제를 잃어갈 때, 힘이 들고 독설을 퍼부으려고 할 때, 결점을 찾고 비난을 하려고 할 때, 이때가 바로 그대에게 있어서 기도를 하늘로 보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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