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9호 제5부 생명을 약속하는 율법

제5부 생명을 약속하는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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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석은 고후 3장의 영적 이해를 풍부하게 해줄 것입니다.

고후 3:6-9 생명을 약속하는 율법

시내 산에서 두려운 위엄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율법은 죄인에 대한 정죄의 말씀이었다. 정죄하는 것은 율법의 영역이지만 그 속에는 용서하거나 구속할 힘은 없다. 그것은 생명을 약속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율법에 따라 행하는 사람들은 순종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정죄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은 속박과 죽음을 가져다줄 것이다.

고후 3:7-11 두 가지 율법(갈 3:19; 엡 2:15; 골 2:14; 히 9:9-12; 10:1-7)

하나님의 백성들, 곧 하나님께서 자기의 특별한 보배라고 부르신 사람들은 두 가지 율법, 곧 도덕률과 의문의 율법(the law of commandments contained in ordinances, 엡2:15)을 특권으로 받았다.

도덕률은 세상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의 창조를 가리켜 보이고 있다. 그 율법의 요구는 각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고 항상 있을 것이며,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의문의 율법은 사람이 도덕률을 범했기 때문에 주어진 율법으로써 미래의 구속을 가리켜 보이는 희생과 헌물 가운데 있는 것들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분명하고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창세로부터 도덕률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써 하나님 자신과 같이 변경이 불가능한 것이다. 본질적 의미에서 십계명( , commandment)의 도덕률은 구약성경에서 한 번도 율법이라 불리지 않았다.

의문(규례법)의 율법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계획에 한 특별한 목적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표상적 율법 곧 희생과 헌물 제도는 죄인이 이 제도를 통하여 크신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도록 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교만과 죄로 말미암아 눈이 매우 어두워져서 죄사함을 받기 위한 속죄 제물인 짐승의 죽음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 제물이 표상하는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의문의 율법은 훌륭한 제도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에 도움을 주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의논하여 마련하신 것이었다. 표상적 제도의 전 체계는 다 그리스도 위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아담은 여호와의 율법을 범한 그의 죄의 형벌을 받는 죄 없는 짐승이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두 가지 율법 모두에 하나님의 인이 있다.

바울은 그의 형제들이 죄를 용서하시는 구주의 크신 영광이 유대인들의 모든 성소 제도에 깊은 뜻을 부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랬다. 그는 또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희생제물로 죽으셨을 때 표상은 그 원형을 만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랬다.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의문의 율법은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덕률과 관계가 있는 것이며 영광이 있었다. 이 두 율법은 다 신성의 인(sign)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과 공의를 나타내신 것이었다. 폐지될 의문의 직분의 영광이 있었다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사 그분의 생명을 주시고 성결케 하는 영을 주실 때, 그 실체는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는가?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the ministration)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간략하고 포괄적이다. 이는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포괄적 의미는 다음의 말에 요약되어 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만약에 죄인이 이 언약의 말씀에 나와 있는 문자 그대로 처리되어야 한다면 타락한 인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아담의 족속들은 이 언약의 문자에서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킴으로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헛되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의 보상이 될 것이다. 모든 범죄자들에게 하나님은 율법이 요구하는 형을 집행할 것이라는 자기 자신의 말로 자기를 묶어 두셨다. 거듭거듭 사람들은 범죄하였지만 그들은 율법을 범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믿는 것 같지 않다.

유대인들의 의문의 율법은 예언적인 것(히 8:5)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대인들의 시대에 그 영광을 반사하고, 유대인들의 모든 성소 제도에 빛을 던지며, 의문의 율법에 깊은 의미를 갖게 한다. 지상에 있는 성막이나 대성전은 하늘에 있는 원 성소의 모형이었다. 유대인들의 율법의 의식들은 예언적이며, 구속의 경륜 가운데 있는 신비들의 표상이다.

율법의 의식과 예전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것이다. 그분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에 자기 몸을 가리우시고 이스라엘 군중을 인도하신 인도자였다. 큰 존경심을 가지고 이 율법을 취급하여야 하였으니, 이는 그것이 거룩하기 때문이었다. 그 율법을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된 후 일지라도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 앞에 그 율법의 참된 위치가 어디이며, 그 가치가 어떠함을 제시하였고, 구속의 경륜에 있어서 그 율법이 차지하는 자리와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과 그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사도는 이 율법이 거룩하신 창시자에게 돌리기에 합당한 영광이었다고 선포하였다. 그것은 폐하여질 것이요, 영광이 있기는 하였으나 하늘과 땅에 있는 그분의 가족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제정하신 율법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늘이 계속 있는 한 주님의 율법도 계속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광에서 더 큰 영광으로(계 22:14)

구약과 신약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약에는 오실 구주에 대한 복음이 있고, 신약에는 예언된 대로 나타나신 구주에 대한 복음이 있다.

구약은 끊임없이 참 희생 제물 되신 분이 오실 것을 가리켜 보이고 있는 반면에 신약은 표상적 희생제물로 예표 된 구주가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 시대에 희미한 영광은 그리스도인 시대의 더 밝고 더 뚜렷한 영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리스도는 자기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폐하여졌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반대로 밧모섬을 경유해서 그분의 교회에 보내신 그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그분은 아버지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축도를 한다.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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