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9호 제3부 없어질 영광은?

제3부 없어질 영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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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고후 3:7) .

어떤 사람들은 이 언급을 보고 하나님의 율법이 “없어”졌다고 결론을 내리는 이들도 있는데, 이 구절에는 “없어”진 것이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지나가는 “영광”이었다고 분명하게 진술돼 있습니다. 그 “영광”은 몇 시간 혹은 기껏해야 며칠 안에 사라졌지만, “돌판에 써서 새긴” 하나님의 율법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라져 버릴 것은 모세의 직분과 유대인의 제도였지 하나님의 율법이 아닙니다(마 5:17,18).

그 영광은 돌비 위에 있던 것이 아니기에 돌비에서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일시적인 영광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나눈 교제의 결과로 임한 것이었습니다. 그 영광은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모세가 거룩한 임재 가운데 있었던 사실을 증명하고,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모세의 사명과 그 교훈을 지켜야 할 백성의 책무를 암묵적으로 증언했습니다. 그 영광은 거룩한 근원에서 온 것임을 증명하여 율법의 구속력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했던 것처럼 의문의 율법과 지상의 성소 봉사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반영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모형 제도에 반영된 영광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임재를 이해하고 경험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드디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사람들은 원형의 영광을 바라보는 특권을 누렸으며, 모형에 나타난 더 약하고 반사된 영광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바울이 의례와 의식의 직분을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희생 제도에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 가운데서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 제도는 본래 그 자체로는 죄의 값인 사망을 거두는 운명에서 아무도 구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찾아야만 하는데, 이는 그분 안에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행 4:12).

눈먼 이스라엘은 결국 메시아인 예수님을 거절하고 그들의 구속주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더 큰 영광이 도래하면서 결과적으로 모형 제도에 반영된 영광이 사라졌으므로 그러한 제도 아래 그대로 머물 구실이 더 이상 없다고 단언합니다.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후 3:11) .

바울은 모세의 얼굴에서 영광(빛)이 사라진 것을 모세 제도의 소멸 즉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의 소멸의 예증으로 설명합니다. 모세의 직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사도의 직분이 등장하면서 모세의 직분은 마무리됐습니다. 견본을 통해 만들던 옷이 완성되면 그 견본의 유용성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하늘에 있는 그것들”(히 9:23)을 돌보기 위해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도 유대주의자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에 초점을 계속 맞췄습니다. 바울은 생명을 나눠 주지 못하는 “의문”의 직분에서, 생명을 나눠 줄 수 있는 “영”의 직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후 3:13).

바울은 영적으로 눈먼 이스라엘의 상태를 예증하기 위해 수건으로 가린 사건을 사용합니다(고후 3:14~16).

바울의 표현에서 사라질 영광은 위대한 원형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끝날 모형과 의식을 표상했습니다. 그 “수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 일시적인 영광이 사라지는 것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은 모형과 의식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맹신했습니다. 그들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형 제도가 본질상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며 앞으로 올 그리스도의 영광의 전조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진리를 고의로 가려서 이스라엘을 속이려고 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에 관해 예언했으며 그분이 임하실 영광스러운 시대를 고대했습니다(신 18:15).

모세의 얼굴을 덮었던 그 수건이 이제는 모세가 쓴 책을 덮고 있습니다. 모세가 말한 말이나 기록한 글과는 상관없이 백성의 마음과 정신은 여전히 눈먼 상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규칙적으로 읽었으며 추측건대 모세에게 영예를 돌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모세를 믿지 않았는데, 이는 그랬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도 믿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5:46,47). 그들에게 모세의 영광은 율법의 “의문(글자)”과 그 안에 규정된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 안에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구약의 예언과 거기에 규정된 형식과 의식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에만 성경의 그 부분을 읽을 때 “수건”이 걷힐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기를 거절했기에 그 수건은 걷히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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