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9호 제1부 고린도후서 3장을 쓰게 된 목적

제1부 고린도후서 3장을 쓰게 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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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율법이 의문의 직분인가? 여기서 의문(grammasin)은 에베소서 2장의 제사제도를 말하는 의문(儀文)이 아니고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란 뜻입니다. 제사제도의 의문(儀文)은 헬라어로 도그마(dogma)가 쓰이는데 여기서는 그와 다른 글자란 뜻의 그람마(gramma)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구절의 정확한 뜻을 알려면 3장의 구조를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추천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과연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받은 사람인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었기에 그의 자격에 대한 시비는 늘 끊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비난하고 헐뜯는 사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나 그 외 어떤 지도자로부터도 말이나 글로 쓰여진 공식적인 추천서를 받은 일이 없다고 비난합니다. 바울은 참 피곤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글(의문)로 쓰여진 추천서보다는 마음에 새겨진 영적 추천서가 우월한 것임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글로 쓰여진 율법의 직분과 우리 마음에 쓰여진 영의 직분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왜 그 신성한 율법이 우리를 죽게 하는 직분이 되는가?” 그 이유는 율법의 기능이 우리를 정죄하여 죄인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자로 쓰여진 율법은 그것이 아무리 신성하다 해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적 복음보다 못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율법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감히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의 직분의 영광은 얼마나 더하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율법 논쟁이 아닙니다.

글로 쓰여진 추천서를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글(의문)로 쓰여진 것보다 더 확실하고 우월한 추천서는 영적 추천서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죄하는 글로 쓰여진 계명을 받고도 모세의 얼굴이 그렇게 빛났거든 하물며 영의 영광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두 돌판을 가지고 시내 산에서 내려와 하나님에게 임명받은 대변인으로 등장했습니다. 바울의 신임서가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룩한 율법을 성령이 자신의 마음과 회심자들의 마음에 동일하게 각인했기 때문에 분명히 실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결코 다른 신임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애와 그가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사람들의 생애가 그의 사명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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