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8호 슬픔과 낙심에서 탈출하는 지혜

슬픔과 낙심에서 탈출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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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슬퍼할 일도 많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고통과 시련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런 고통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상황에서 항상 웃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어렵지만 이런 일 때문에 내내 슬퍼하며 탄식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야 할 목적, 의미, 사명은 달라진 것은 없으니까요. 내 주변의 환경이 나를 조금 힘들게 할 뿐이지 그것이 나의 믿음을 손상시킬 수 없도록 우리 마음을 지키자는 말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눅 9:23).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많은 사람들은 역경과 환난을 받아들일 때 한숨을 쉬면서 그것을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역경과 환난이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찾아온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우리가 굳이 당하지 않아도 되는 환난을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선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그리스도의 주관적 지배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해 못 할 고통스러운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 고통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그 공격은 내가 완전히 쓰러져 고통에 잠식당해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표현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으므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도록 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될 때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양들을 사랑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거룩한 목자가 생각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목자는 양떼를 몰고 바위 많은 언덕과 숲과 거친 계곡을 지나 강변의 풀 많은 외진 곳으로 인도합니다. 고독한 밤을 지새우며 산에서 강도를 막고 병들고 연약한 양들을 친절하게 돌볼 때에 그 목자의 생명은 양들의 생명과 하나가 됩니다. 강하고 부드러우며 애착심이 많은 인자한 목자는 아무리 양떼가 많을지라도 모든 양들을 각각 알고 있습니다. 양마다 다 이름이 있으며 목자가 이름을 부를 때에 그들은 응답합니다. 이 세상 목자들이 자기 양을 아는 것처럼 거룩한 목자도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양무리의 아픔과 고통을 아시고 동정하시며 위로하십니다.

그래서 한 마디면 족합니다. “주님, 아시지요?” 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신 목자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와 도움을 어찌 아끼실까요? 슬프십니까? 울고 싶습니까? 원통합니까? 속상합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치시기 전까지 이 세상은 고통의 세상입니다. 그 눈물을 자신의 죄 때문에 슬퍼하는 데 바치도록 합시다. 내가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의 구름이 나를 엄습할 때 우리의 구주께 달려 나갑시다.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거룩한 목자께 달려 나갑시다. 또한 엘리야의 경험을 소개하며 슬픔과 낙심에서 탈출하는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왕상 19:4).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분노하여 엘리야를 죽이겠다는 소식에 무서워 광야로 도망가 죽여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능력을 힘있게 나타내심으로써가 아니요 “세미한 소리”로 자신을 당신의 종에게 나타내십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계시를 기다리는 동안 폭풍이 휘몰아치며 지나갔으나 그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동안 엘리야의 급한 성미는 가라앉고 그의 정신은 부드럽게 되어 억제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조용히 신뢰하고 굳게 의지하면 이 어려운 때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격정과 두려움과 불안과 깊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 간담을 서늘케 하는 어떤 말에, 사방이 막힌 것 같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쓰라린 상처를 받았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뒤엉켜버리면 엘리야처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차라리 죽었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나의 억울함과 분노, 격정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가서” 네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9:15).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신세타령 하면서 울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현재의 실망과 낙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가서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의 명령에 따라서 봉사하면 기쁨이 우리에게 넘쳐서 좌절을 딛고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어떤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어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울고만 있지 말고 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갑시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일할 시간이 짧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도록 합시다. 그것이 또한 내가 사는 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있고 우리는 속히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진리는 더욱 선명해지고, 우리는 더욱 정결해짐으로 오직 주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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