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8호 제4부 성경이 알려주는 짐승의 우상

제4부 성경이 알려주는 짐승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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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짐승의 우상

짐승의 표가 설명된 계 13장에 의하면 짐승의 표를 강요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먼저 세워집니다.

사람들은 짐승의 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이 있으나 짐승의 우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 짐승의 우상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죽이는 일을 한다고 15절에서 설명합니다.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1,12)
이 짐승은 교황권을 언급하는 첫 번째 짐승과는 다른 짐승인데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면서 교황권에게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경배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교황권의 행동대장, 이 새끼 양 같은 짐승은 누구일까요?
첫 번째 단서는 그것이 땅에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은 바다에서 올라왔지요. 바다는 많은 백성들을 뜻합니다. 즉 인구가 밀집한 유럽에서 일어났으나 새끼 양같은 짐승은 아직 정착되지 않은 땅에서 올라왔다는 의미입니다. 개신교가 교황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아메리카 대륙 즉 미국입니다. 이 세상 역사에서 이처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이 성경에 예언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 어렵지요. 두 번째 짐승은 단순히 미국이 아니라 개신교의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미국입니다.
이 새끼 양같은 짐승은 참된 개신교회가 아니라 배도한 개신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12절에서 이 새끼 양같은 짐승이 세상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교황권을 경배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계 17:5절에서는 교황권을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고 그녀가 낳은 딸들은 배도한 개신교를 의미합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계 13:13)
13절은 오늘날 배도한 개신교회에서 행해지는 거짓 성령운동, 즉 각종 기적, 치유, 환상 등을 의미합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 13:14)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즉 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무슨 물체나 신상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image 유사함, 즉 교황권을 닮은 또 하나의 형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교황권의 어떤 모습을 닮은 우상일까요? 그것은 1260년 동안 피에 취했던 교황권처럼 배도한 개신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동일한 핍박을 행한다는 설명입니다. 이미 짐승의 우상은 세워져 있고, 마지막 행동 직전에 있습니다.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5-17)
쇳덩이나 돌덩이 같은 우상이 말한다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권위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배도한 개신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함으로써 교황권을 위해 일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미국과 같은 자유로운 나라에서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마커슨(A.J. Marcussen)의 국가적 일요일 법령 The National Sunday Law 52,53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주일 동맹의 회장이 전국적인 TV 화면에 나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 “만약 어떤 사람이 일요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죽임을 당할 것입니까?”
회장: “그것이 바로 제가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을 건국 당시의 이념으로 돌이켜야 한다고 거센 입김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는 천주교와 기독교의 유권자들의 표에 따라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야 한다는 미국의 건국 당시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죠지 밴드맨(George Vandeman)의 적그리스도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Antichrist, 1986, pp 59,60)
“청교도들은 미국 해안에 닿자마자 엄격한 일요일 법으로 그들 자신의 시민들조차 억압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가난한 사람이 연못에 빠져서 옷을 말리느라 일요일 예배에 불참하였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를 채찍질했다. 존 루이스와 사라 채프맨 두 남녀는 일요일에 사과나무 아래에 함께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법정에 기소되었다.”

“미국에서 종교는 그들의 전부였다. 주 정부는 교회의 일부이고, 정책은 신학의 일부이며, 시민의 자격은 교인의 특권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으로 청교도 사회는 관용이 없고 박해자의 투쟁 정신이 팽배했다.”(모지스 C. 타일 Moses C Tyler, 식민지 동안의 미국 문학의 역사 A History of American Literature During the Colonial Time, 1권 p.90)

“초기의 미국 일요일 법은 정말로 무서웠다. 1610년 버지니아 법은 일요일을 범하였거나 아침 저녁의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범행에는 그들의 주당 식량과 급여를 잃고, 두 번째는 그들의 급료를 잃음과 동시에 공적으로 채찍질을 당하고, 세 번째는 사형을 당해야 했다.”(적그리스도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Antichrist, 61).

미국은 교황권의 행동대장으로서 한 가지 일을 완성하기 위해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보수파는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도덕적 타락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상황이 대단히 악화되었으므로 악의 조류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일요일에 교회에 가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을 법률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일요일마다 교회로 가도록 강요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명분입니까!

도덕적 가치를 법률화하게 되면 개신교는 과거에 교황이 행사했던 것과 똑같은 박해의 권한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조만간 미국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공할 만한 박해의 장면을 보게 될 것이고 그 박해는 전 세계적입니다. 어떠한 파시즘보다 더 무서웠던 중세 교황권이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기입니다.
중동의 전쟁이 계속된다면 연료 고갈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식량 전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제공황뿐 아니라 온역이나 핵전쟁, 천연재해들도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위기와 두려움이 강력한 지도자로 하여금 도덕성을 법률화하게 합니다. 국가적인 일요일 준수법령은 바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도덕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나 강요된 도덕성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교회 출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나 강요된 교회 출석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압적이거나 강요하지 않듯이 우리 또한 복음을 강요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재와 깨닫게 하심이 있을 때, 호소가 있을 때 우리는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치면서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의 짐승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교황권이며 안식일을 일주일 중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하였고 온 세상이 놀랍게도 그 짐승을 따르고 있습니다.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우상은, 항의하기를 멈추고 개신교회라는 이름을 버리며 다시 짐승에게로 돌아간 배도한 개신교회를 의미합니다. 중세 교황권에 맞서 싸웠던 항의자, 대항자라는 뜻의 개신교의 이름이 무색합니다. 더 이상 개신교가 아니라 음녀의 딸입니다. 짐승의 우상인 배도한 개신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하고, 거짓 안식일을 지키게 할 것이며, 거절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죽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이단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은 승리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신실하다면 그 승리자의 무리에 여러분이 서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비웃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낼 것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 안식일을 깨닫고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기를 시작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많은 사람의 구원은 우리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예언적 경고들을 우리가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베뢰아 인들처럼 성경을 상고하시기 바랍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 위해 나갈 때, 자기를 지나쳐 버리고 간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견딜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여러분의 결정이, 곧 다가올 장래에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선택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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