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7호 제3부 무익한 종의 정신과 태도

제3부 무익한 종의 정신과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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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짜 주인과 참 주인

세상에는 두 주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는 충성하는 종이 있게 마련입니다. 성경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인간에게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라는 무서운 주인이 있고 순종하게 만들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의로운 주인이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미 죄에 노예 되었던 사람도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롬 6:18) 될 수 있으며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영생하게 만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라는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진주가 되시며 이 보배를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으나 그 진주를 얻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값없이 주신 선물이시나 그분에게 아낌없이 자기 자신 곧 영과 혼과 몸을 바치는 자들에게만 그러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분께 바칠 때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보화와 아울러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언제든지 우리의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하기 위해 자신에 대하여 온전히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었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참 주인인 그리스도가 주시는 선물

1)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은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단 하나의 죄도 용서할 수가 없고 자신을 의롭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이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 사탄의 지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로 옮겨짐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고작 담배를 안 피우고 술을 안 마시며, 안식일을 잘 지키는 정도라고 생각하나 구원은 나를 지배하는 주인이 바뀌는 것이며,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며 사망의 나라에서 생명을 주는 나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역사로 변화시키시어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지키며 영원히 거룩한 천사들과 살기에 안전한 자, 합당한 자로 회복시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재창조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말하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며,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따라가게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이같은 구원의 능력을 날마다 소유하고 경험하게 될 때 그 결과로 썩어 없어질 몸을 피하여 죽지 않을 몸으로 변화받아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세월을 함께 거하게 되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새 마음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성결하게 살기를 원했으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실패하는 경험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도우시기 위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1-34).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하여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새 마음을 주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새 언약은 죄의 용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섬기고 순종하게 만드는 놀라운 약속이며 사랑을 행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옛 언약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는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라고 말하지만 고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자신감과 공언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의 표준은 너무 높고, 십계명은 감히 사람들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우리에게 전혀 새롭고, 획기적인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마음”은 “새 언약”을 이루어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옛 언약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지만, 말씀대로 살 능력은 없습니다. 계명을 외울 수는 있어도 지킬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새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새 마음을 갖는 것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고 새 언약을 성취시키기 위한 성령의 능력입니다.

3. 무익한 종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주님이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종이 될 수 있을까요? 단 하나의 대답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종이 될 수 있겠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 그분의 종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봉사야말로 비참한 종살이, 노예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기적의 생애인데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알 때, “주님 제가 다시 태어나도 주님의 노예가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 사랑과 희생을 깨달은 사도들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인 베드로”라고 소개했고 마리아도 자신을 “주의 계집종”이라고 불렀습니다(눅 1:38). 우리는 주인에 의해서 발견되기 전까지 잃은 바 된 자들이었고 영원한 멸망을 향해 치닫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에게 종속되어 속박당한 상태이나 우리가 주님에게 묶인 것은 돈으로 팔린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묶여졌습니다. 사랑으로 묶인 종의 기쁨은 주인이 만족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깨달음이 커질 때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그 희생을 알게 될 때마다 우리는 더욱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7-10).
겸손히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아는 종, 주인을 사랑한 종,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종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종이 될 것입니다. 품삯 때문에 일하지 않고 그저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며,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며, 예수님이 원하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종은 주인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만한 자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종은 단지 자기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고, 그것마저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결과요 믿음의 열매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공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익한 종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게 만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게 되면 누구나 복종할 수 있도록 변화됩니다. 십자가를 알고 그 사랑을 이해하면 그 사랑에 반응해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생명이며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순종은 기쁨이 되며, 이것이 구속의 비밀이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무슨 유익을 드렸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 일 없어 장터에 서서 놀고 있는 가련한 우리를 불러서 일꾼으로 사용해 주신 고마운 주인, 강압과 강제로 속박하지 않으시고 한량없는 사랑을 깨달아 알 때까지 기다려 주신 고마운 주인,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의 수치와 죄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우리를 속량하신 고마운 주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볼 때 죄를 이기는 승리의 경험이 나옵니다.
십자가를 볼 때 굳어진 육신의 마음이 감동을 받아 새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십자가를 볼 때 사랑의 강권에 의해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새 언약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육의 심비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예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노예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노예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십니까? 그렇다면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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