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7호 제2부- 옛 언약과 새 언약

제2부- 옛 언약과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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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서로를 묶어주는 줄입니다. 우리의 생명 자체가 약속들 때문에 유지되고 있으니까요. 자연의 법칙들도 일종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천연계의 법칙을 어기면 죽음을 가져오게 만드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적인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들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피조물들은 결국 죽게 되는 것이요, 죽어 가는 동안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야 합니다. 동물들이나 식물들에게는 도덕적인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마음속에 거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법칙을 순종하며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법칙을 지켜 나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안 되니까,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하나님의 법은 도저히 지킬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죄 지어 타락한 인간을 사랑하셔서,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하시고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언약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이 소개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공부하고 더 유익하고 좋은 언약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1. 언약이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번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은 꼭 지키시는 너무 정확하고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구원 얻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약속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언약을 맺기 원하시는 이유는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기 위해서, 또한 인간을 회복시키셔서 잃어버린 본향 에덴으로 데려 가시기 위해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언약 속에는 죄 많고 타락한 인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시키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 있으며, 그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책임지고 이루시겠다는 소망 또한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인도해 오셨으며 이 제의를 우리가 받아들이면 언약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구원하고 회복하는 것이 되려면…

첫째,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약속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그 언약은 우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과 언약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약속은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는 사람들의 것이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조건들, 곧 그분의 뜻에 대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모든 약속을 다 해 놓으셨지만, 하나님의 그 언약과 약속을 받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순종, 곧 우리의 협력입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켜 주시는데, 곧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주시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으로 가능해집니다.

2. 옛 언약

1) 옛 언약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셔서 당신과 백성 사이에 맺을 언약을 제안하셨습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3-6).

이 말씀 가운데 언약의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언약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안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7]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출 19:7-8).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다 행하리이다.”라는 대답이 하나님께 올려지는 순간 옛 언약의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이 공식적으로 시행되려면 먼저 그 약속을 인정하고 확정하는 일이 있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받아들이겠다고 공언한 이스라엘 백성은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약속하므로 언약이 체결된 것입니다(참조 출 24:4-8).

2) 옛 언약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그러나 그 조약 체결 과정에 결정적인 잘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약속하는 백성 편에서 보인 태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요구 사항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나 하나님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협조와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공언은 했으나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번 장담했으나 그들의 자신감으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고 따라서 그 언약은 지속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언약을 맹세한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에 있었지 언약의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3. 새 언약

성경에는 새 언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새 언약을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일까요? 새 언약에 더 좋은 조건과 축복의 약속이 들어 있을까요?

1)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
“[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히 8:6-9).

정말 옛 언약은 흠이 있는 언약이었습니까? 그래서 폐해져야 하는 것이었을까요?
옛 언약은 짐승의 피로 인준된 것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힘으로 지키겠다고 공언한 이스라엘 백성의 의지에 근거하여 이루어졌습니다(출 24:5-8, 히 9:19-20).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계명을 기록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기초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인정되고 확정되었습니다. “더 좋은 약속”, 즉 죄 용서의 약속과 마음을 새롭게 하여 계명의 원칙과 일치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 위에 세워졌습니다.

2) 새 언약이 더 좋은 이유
새 언약도 옛 언약과 마찬가지로 피를 흘림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염소와 송아지가 피를 흘리는 대신에 하나님 아들의 피가 흘러졌습니다.
“[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 13:20-21).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는 능력없는 인간의 빈약한 약속 대신에, 이제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우리 속에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와 그분의 능력이 모든 그리스도인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분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이 새로운 언약을 보증하신 것입니다.
즉, 언약을 제시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언약을 맺는 상대방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실 것이라고 보장하신 것입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음을 잘 아시고, 성령을 통해 당신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하셔서, 우리를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이 새 언약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은 새 언약이 더 좋은 언약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3) 새 언약의 경험 (거듭남)
새 언약의 약속은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마음 판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대신,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랑의 법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새 언약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의 구속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희생제물을 드리던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유효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언약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때로부터 그것은 새 언약으로 불렸습니다. 새 언약 역시 하나님의 계명이 기초가 되고 있으며 그것은 사람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 위치에 처하게 하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즉 순종은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짐으로써 가능케 됩니다.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은 참된 거듭남의 경험을 통하여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거듭남의 경험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심으로 우리의 생각과 동기와 심령이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리스도께서는 실제로 신자의 생활 속에 임하셔서 순종에 필요한 당신의 능력을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종류의 육체를 취하신 체 죄를 극복하셨는데, 그것은 죄에 대한 당신의 승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도록 허락하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실제로 죄와 분리된 당신의 거룩한 생애를 우리 육체 속에서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을 신뢰하고 따르는 모든 자녀를 위한 새 언약의 약속입니다. 또한 이것은 누구든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며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골 1:27)입니다.

새 언약의 조건에서는 단 한 영혼도 타락한 본성의 강한 충동을 스스로의 힘으로 싸우도록 내버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성품에 기초한 영원한 약속들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모든 결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초인간적인 능력을 제공해 줄 것입니다. 죄와 유혹에 부딪힐 때마다, 그분의 능력을 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자마다 마음이 변화되고 부드러워져서, 모든 고집과 강퍅함과 이기심과 교만을 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이 영광스러운 새 협정의 “더 좋은 약속”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4) 언약과 계명이 폐했을까요?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계명이 폐했기 때문에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곧 옛 언약인 계명이 폐했고 은혜의 시대인 새 언약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폐해진 것은 계명이 아니고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 언약은 십계명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령하신 도덕률이었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간의 언약이 아니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어떻게 약속(언약)이 될 수 있을까요? 옛 언약은 십계명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언한 이스라엘 백성의 맹세와 하나님의 축복인 약속이 서로 교환된 것이었습니다. 백성은 그 법을 지키기로 약속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 답례로써 그들을 복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폐해진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십자가에서 폐해진 것은 의문(제사)의 율법이지 십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하자 그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구원의 계획을 발표하시고(창 3:15),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제사 제도를 주셔서 그것을 통하여 그들이 믿음을 표현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 때부터 시작된 동물의 희생 제도는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 크게 곡해되었습니다. 또한 애굽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사제도는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모든 생활방식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노예로만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계몽되고 교육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 제도와 성막에서 유지되어야 할 예배 형식에 대한 완전한 지시를 다시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식 율법을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이 희생 제도에 관한 의식 율법을 신약 성경에서는 “의문의 율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십자가에서 폐지된 율법은 바로 이 의식 율법을 뜻합니다. 또한 제사 제도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 전반에 걸쳐서 지켜야 할 규례들을 모세로 지시하게 하셨는데, 이 규례들은 특별한 성일, 유월절 같은 종교적 절기들, 그리고 절기와 안식일이 겹쳐지는 연례적인 절기 안식일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의문의 율법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리키는 표상들이었으며, 다가오는 사건을 가리켜 주는 모형과 그림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의문의 율법들과 모형들은 표상의 원형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자, 그분 안에서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의문의 규례들은 잠시 동안 주어졌다가 십자가에서 폐지된 것임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문의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의 진리들을 가르치고, 오시는 메시아를 가리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실제로 오심으로써 표상적 의식들은 존재해야 할 목적을 이루게 되었으므로 의문의 율법이 십자가와 함께 폐한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폐한 것은 십계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은 성소의 두 번째 칸인 지성소 안의 법궤 안에 거룩하게 보관되었습니다.

십계명의 율법에 대해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고 기록하였고(시 119:89), 예수님께서는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가 존속하는 한 이 십계명은 보존되리라는 사실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분의 보좌처럼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는 말씀이 십계명을 폐하는 새로운 법을 말씀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전혀 새로운 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에 나왔던 말씀을 인용하면서 십계명의 근본적인 성격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9:18).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혼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한다면, 그는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기록한 처음 네 개의 계명들을 순종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나머지 여섯 개의 계명 즉, 동료 인간들에 대한 의무와 관련된 계명들을 순종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을 순종하고 이루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의문의 율법을 종식시켰지만,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류에게 내려진 변할 수 없는 십계명의 의무와 율법의 정죄를 속하기 위해서, 하늘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셔야만 했다는 사실은 율법의 요구와 그 권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새 언약 하에서 믿음과 율법 사이의 관계를 이렇게 분명히 나타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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