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7호 제1부 율법과 복음

제1부 율법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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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제목: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잘못 제시하므로 구원론에 대하여 큰 오해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 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하실 때, “너를 용서하노라” 하고 단순히 선언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보혈의 피에 적셔진 사람은 옛 생애를 벗고 십자가로 살게 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삶을 살아갈 때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표상했던 이스라엘의 성막 제도에서도 분명합니다. 죄인이 양 위에 손을 얹고 죄를 고백하고 양을 죽임으로 모든 속죄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 그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제사장이 그 흘려진 피를 가지고 죄인들을 위해 중보의 사역을 해야 완성이 됩니다(레위기 4:26,35, 5:10,16, 6:7).

우리의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중보사역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이 중보사역은 십자가 사역의 일부분입니다. 둘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이 중보는 십자가의 보혈을 근거로 하시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이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이번 호 신앙기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삶에 대한 빛을 비춰 주기를 기도합니다.

제1부 율법과 복음

하나님의 법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해되어지느냐에 따라 율법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율법을 이해한다면 우리를 행복하고 안전하게 하는 울타리로 여겨져서 감사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나타내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며,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활용함으로써 용서와 평화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달려가게 해 줍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율법을 자비의 측면에서 보고, 금지조항이라는 측면에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금지조항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행복을 보증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였을 때 그것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품성을 순결하게 하고 그 품성은 영원히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올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속박하는 존재로 인식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우리 마음의 태도와 생각에 변화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1) 율법과 복음

1. 두 가지 율법

하나님의 백성들, 곧 하나님께서 자기의 특별한 보배라고 부르신 사람들은 두 가지 율법, 곧 도덕률인 십계명과 의문의 율법을 특권으로 받았습니다.

의문의 율법은 표상적 율법입니다. 곧 짐승의 희생과 헌물 제도로 죄인이 크신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도록 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교만과 죄로 말미암아 눈이 매우 어두워져서 죄사함을 받기 위한 속죄 제물인 짐승의 죽음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이 제물이 표상하는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의문의 율법은 훌륭한 제도였으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의 희생제물로 죽으셨을 때 표상은 그 원형을 만났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의문의 율법은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덕률은 세상을 창조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계속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창조를 가리켜 보이고 있으며 그 율법의 요구는 각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이 있고 항상 있을 것이며,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도덕률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써 하나님 자신과 같이 변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덕률은 표상이나 그림자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율법 가운데 한 계명도 바꾸거나 변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려고, 율법의 명예가 유지되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죄에 대한 희생제물로서 자신을 바치실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고, 갈보리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을 향한 놀라운 사랑과 함께 그의 율법의 불변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율법과 복음의 관계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며 복음은 율법을 펼쳐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뿌리가 되고 복음은 향기나는 꽃과 그 꽃이 맺는 열매가 되는 것이지요.

3. 율법의 기능

율법에 죄를 지적하는 기능이 있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능력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의롭게 하고 정결케 하는 은혜가 없습니다. 인간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고 할지라도 단 한 명의 영혼도 구원받을 만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받는데, 그것은 값없는 선물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우리는 순종하려고 열심히 애쓰는 행위로 용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떤 죄인도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납을 받고 호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고 의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정결함을 받아야 할 필요를 보여주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위대한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해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죄인에게 그의 형편을 알려줌으로써 죄인을 정죄하고 참된 정결함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도록 지시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많은 그리스도인이 구약은 행위와 율법의 시대이며, 신약은 은혜와 복음의 시대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구약시대 사람들은 행위로 구원을 받았고, 신약시대 사람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누구든지 구원하기 위한 완전하고 아름다운 한 가지 계획만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행위로 구원받은 자들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로 나누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구속함을 받은 모든 영혼은 은혜로 구원을 받은 죄인들일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구원을 받은 자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한 자들로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흠 없는 양을 성막으로 가져가서 죽이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는 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자는 영원토록,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높이는 구속의 노래를 함께 부를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참된 복음과 구원의 경험

율법과 은혜는 서로 경쟁 속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협력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은혜는죄로부터 구원해 줍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이고, 은혜는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둘의 참다운 관계를잘 배합시킨 아름다운 성경 구절이 계시록 14장 12절입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믿음과 행함에 대한 얼마나 완전한 묘사입니까?

순종의 행위가 사랑의 참다운 테스트(시금석)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습니다. 말과 공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 증거는 순종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주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는우리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계셨기 때문에 율법을 순종하실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예수님만이 단 한 번의 죄도 범하지 않고 사셨던 유일한 분입니다. 주께서 그러한 완전하고 승리하는 생애를사셨던 비결이 로마서 8장 3,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율법이 육신으로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육신을 취하시고도 완전하게 사심으로써 육신을 죄로 정하여 우리 속에서 율법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위의 성경절에서 사용된 “의”라는단어의 헬라어 “디카이마”는 문자적으로 율법의 “의로운 요구”라는 의미입니다. 이말씀은 우리도 그분께서 쟁취하신 것과 같은 승리를 할 수 있게 하려고 완전한 승리를 얻으셨다는 뜻입니다. 마귀를정복하시고 육신 가운데서도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모본을 보여주시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오셔서 당신께서 얻으셨던 승리의 경험을 우리와 함께 나누시겠다고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힘과 내재하시는 능력으로만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가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이며 복음의 결과입니다.

누구도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지만 예수님의 가능케 하시는 힘을 통하여 그 모두를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당신의 의와 깨끗함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칭의), 우리 승리의 생애를 위하여 당신의 의를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성화).

율법에 대한 순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더는 십계명을지킬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합니다.

“[14] 죄가 너희를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4-15). 은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법을 범할 수 있는 면허증을 주지 않는다고 성경은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법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율법의 정죄 아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율법아래에 있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들은 법을 범하지 않음으로써, 법에따라 정죄 당하지 않는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요 은혜의 능력아래 있는 것입니다. 은혜는 죄의 권세를 누르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케 하는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이 주는 죄책감과 그 정죄 아래 있지 않은 이유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계속해서 죄에 거하지 않으리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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