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6호 주 예수 대문 밖에

[신앙간증] 주 예수 대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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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사랑하는 이유>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인생 절반의 포인트를 넘어선 46세 초신자의 부끄럽지만 솔직한 간증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진정한 회개을 하지않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의 아픔을 들추는 것은 아주 큰 아픔이고 세상의 삶이란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많은 더러움이 함께하는 거친 여정이기에 더더욱 저만의 비밀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두서 없지만 제 안의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용기내어 하나하나 적어봅니다.

<이해 못할 엉망의 삶>
저는 제주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사당을 모시고 점을 치고 부적을 쓰는 보살이었습니다. 토속신앙이 강한 제주도의 특성상 이모와 고모, 삼촌들 대부분은 무당, 보살, 법사, 스님들이었고 저는 자연스레 그 속에서 자랐습니다. 처녀시절 신내림을 받고 보살이 되셨는데 신통하기로 소문이 나서 우리 집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모은 돈으로 한라산 어귀에 개인사찰을 구매해서 떠돌이승들을 데려다 놓기도 했습니다.

저는 자연스레 그러한 불교와 토속신앙 속에서 자랐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절에 가곤 했습니다. 심심하면 굿하는데 데려가고, 붓글씨를 잘 쓴다고 부적 그리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죠.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십자가는 쳐다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십자가가 있는 집은 어지러워서 들어가기가 겁이 났습니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지요. 입구에 발만 들여놔도 집에 오면 맞아 죽을 죄니까요. 수없이 많은 굿판과 점치는 것 그리고 매일 집안에 모셔 두는 불상들 앞에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며 삶과 죽음, 고통, 내세, 신의 존재 등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건 보이지는 않지만 영과 혼은 존재했고 확실히 귀신도 존재했습니다(단, 한번이라도 굿판을 삼박사일 간 머물면서 본 사람은 이것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신은 왜 인간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지, 귀신들은 왜 그리 떠돌아다니며 한을 풀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머니는 결국 제가 군 제대 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 뇌수술로 더 이상 정상인의 생활을 하실 수 없게 되었고, 저는 그 일과 다른 여러 가지 핑계로 고시를 포기하고 사탄의 세계에서 15년간을 살았습니다.

불법적인 사업을 크게 했고(불법 카지노) 사람들의 영혼을 갉아먹으며 하루에 몇천만 원씩 순이익을 올리며 매일 술과 여자로 탕진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쾌락의 끝은 처절했습니다. 단속이 강화되면서 여러 군데 벌려 놓았던 매장들이 일시에 문을 닫게 되었고, 주변인들이 구속되고 저는 그후 십여 년간을 제 이름 없이 타인의 이름으로 정체를 숨기고 살아왔습니다. 고향을 가지도 못했고 제가 알던 모든 과거와 단절됐습니다. 지명수배 12건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가진 돈은 단돈 몇만 원. 그러나 다시 노력해서 제 이름으로는 아니지만 열심히 해서 1~2년이 지난 후 가구점 세 군데를 운영할 정도로 사업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에 또다시 방탕한 생활에 빠져서 일시에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계룡산 인근에서 방황하다가 모텔업과 펜션업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경기도에서 펜션을 임대로 운영했습니다. 일년만에 소문이 나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고 레저사업까지 손을 뻗치고 대형마트를 운영하다가 방만한 운영으로 다시 부도, 이후 또 주머니에는 몇만 원, 항상 망할 때 제 주머니에는 몇만 원이 전부입니다.

그 이후 서울로 다시 가서 새벽 인력시장에 방값을 벌기 위해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유명한 철거팀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고 인테리어 기공들을 만나게 되면서 인테리어 사업을 배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여러 사업을 통해서 이미 냉장기술, 에어컨기술, 가구기술 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테리어 기술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학습능력이 좋아서 아무리 단시간이라도 어떠한 시험이든 통과하고, 기술 습득도 남들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 때문에 기회도 많았지만 그만큼 더 큰 좌절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저의 능력으로 어찌해 볼 심산으로 이리저리 사업을 벌여 놓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또다시 도산하게 됐습니다. 이때 화를 주체 못 해서 사고를 치고 이전에 지명수배 건들이 발각되면서 결국 구치소를 가게 되었습니다. 딱 100일간 세상의 끝에 가봤습니다. 진작 다 털어버릴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제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인테리어 최고기술자로 살자! 열심히 살자! 하지만 출소하는 날 두 어린아이의 엄마는 제게 더 이상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너무 겁이 난다고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십여 년간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멀미 나게 태웠으면 이제 그만 놔주라고요. 그래서 헤어졌습니다. 두 아이는 제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제 정말 잘해보려 했는데… 정말 잘해보려 했는데… 하지만 다시 인생은 엉망이 되어갔습니다. 차라리 나라는 놈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너무나 예쁜 두 아들 녀석이 저를 쳐다볼 때면 제 가슴은 매일 무너졌습니다. 다시 매일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왔습니다. 보모를 200만 원 이상을 주며 구해서 애들을 아침저녁으로 맡기고 출근해서 죽도록 일하고 퇴근해서는 곧장 애들을 데리러 가야 했습니다. 차라리 두 녀석이 없다면 그만 살았을 텐데… 정말 사는 게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나는데… 두 녀석이 저를 놔주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2년 전에 서울 독산동에 거주할 무렵, 같이 일하던 사장이 매일 교회 가자고 사정사정할 때 제가 정말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응대하는데도 끝까지 손을 잡고 소원이라고, 한 번만 같이 가자고 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따라간 교회… 정말이지 제게 있어선 북한에 가는 것보다 더 힘든 곳이 교회였습니다. 하나님? 전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냥 모든 신들이 다 싫었습니다. 다 미웠습니다. 저를 왜 태어나게 해서 이렇게 아프게 하는지 조용히 죽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갔는데,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저의 지난 과거들이 머리를 스쳐가며 한없이 눈물이 나고 결국에는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웠고 너무 신기했습니다. 절에 살면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 그냥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교회를 매일 갔습니다. 그냥 주님을 만나러 매일 아침 잠시 들러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차 한잔 마시고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어르신들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게 아니라고 알파코스를 수료해야 하고 몇 개월간 다른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진정으로 신실해지려면 십여 년을 교회를 다녀야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오기 전에 알파코스 기타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와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성경은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을 알기 전에는 지나가던 공중화장실에 아무렇게나 붙여 놓은 명언 한 마디에도 감동을 받아 일기에 적어 놓곤 했는데, 그보다 열배 백배 주옥같은 말씀들이 들어있는 성경을 매일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나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은 제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급한 마음으로 인터넷에 나온 목사님들 말씀을 하루 종일 들으며 살았고 그중 유독 평범하지 않았던 목사님이 바로 손계문 목사님이셨습니다. 몇 명의 목사님 중에 손목사님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들을 정도로, 아니 야심한 밤에 지친 몸으로 졸면서 듣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경험 있는 분들께 손계문 목사님이 누구시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런데 초신자들은 그런 설교를 들으면 안 된다고 다들 만류하시더군요. 그래서 말씀이 정말 좋았는데 워낙 주변에서 반대하니 잘못된 분인가보다 하고 그 이후로는 잊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제게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너무 큰 실망을 하고 하나님을 믿지만 굳이 교회는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 친구를 통해서 목장교회라는 곳을 소개받아서 아이들 때문에 또 꾸역꾸역 나가게 되었습니다.

각 목장별로 소그룹을 나누어 주중 저녁에 모여 기도하고 따로 교회를 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목자와 목녀라는 분들의 권위의식이 눈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여러 목장들 중에서 숫자가 많은 곳이 대단하게 평가받고 마치 실적 좋은 팀이 표창 받는 듯한 그런 느낌의 교회여서 그만 다녔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은 장사를 한다는 것을요. 교인들은 사업목적으로 교회를 나가고 장로님들은 개척교회를 만들어서 부목사 한 분을 초빙해서 교회사업을 하고 십일조와 헌금으로 그리고 전도로 신도 한 명당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을요. 저희 세 식구는 하나님의 세 어린양이 아니라 교회장사의 세 머릿수인 것을요. 진절머리가 나서 “하나님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교육을 잘못하시는 것 같습니다”라는 불경한 푸념을 하곤 다신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안 나가는 저는 사탄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습니다. 하긴 그간 몇 십년을 동고동락한 사이니 저를 가지고 놀 정도였습니다. 정신없이 사고치고 방황하다가 그나마 두 아들이 없었으면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너무 지쳤습니다. 제가 찾는 하나님은 보이지를 않고 다들 교회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 같고 세상이 너무 외롭게 여겨졌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부산에서 인테리어 동업 제의가 들어와 무작정 부산으로 왔습니다. 광안리에 방을 구하게 되고 이사한 날 우연히 아이들과 길을 가다가 교회를 보자 저도 모르게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수없이 많은 교회 앞을 다녀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조금 있다가 수요예배가 있다고 해서 예배를 드렸고 간만에 다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두 달여를 그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정치적이었고, 영의 양식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은 참을만 했지만 가식적인 모습과 권위주의적인 모습에서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한국에 참교회는 정말 없는가’하는 내면의 고통 속에 있을 때, 그 교회에 저보다 몇 달 먼저 들어왔고 나이도 두 살 많은 성도분이 계셨는데 둘이 새신자여서 그런지 잘 통했고 저와 그 형님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토요일이면 서로 연락해서 교회에서 만나서 차도 마시고 성경도 읽고 찬양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새 신자가 너무 튄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고 있으면 튀는 신자라서 안 되고, 새벽예배 때 맨 앞에 앉으면 새신자는 뒤에 앉는 거라 그러고… 교회 생활이라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건지요… 제가 더 이상 교회를 안 나가겠다고 그 형님께 이야기하자 그 맘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사실 본인은 손계문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는데, 김해에 손목사님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나가보라고 권유해 주시더군요. 저는 깜짝놀랐습니다. 손목사님은 내가 2년 전에 말씀을 들었던 목사님 아닌가! 저는 그때부터 다시 손목사님 설교를 매일 듣게 되었고, 물어 물어 김해교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형님은 가족들이 함께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혼자 빠져나오기는 힘들다면서 일단 제게 먼저 가 있으면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김해교회>
건물이 있는 교회가 아닌 일반 주택이었습니다. 우선 성도들(여기서는 형제, 자매라고 부르더군요)의 표정이 달랐습니다. 어디서 이런 분들만 골라서 왔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하고 선하신 얼굴과 표정들… 그냥 한마디로 “나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두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큰 교회 있다가 여기 오니까 솔직히 심심하지?” 그런데 9살 큰 녀석의 대답은 저를 깊이 감동시켰습니다.
“아빠. 근데 전에 교회가 편리하긴 한데, 삼촌들하고 이모들이 좋진 않았거든 근데 여긴 좋아”
“왜? 전에는 좋지 않았어? 혼냈어?”
“그게 아니고 교회가면 ‘안녕 태현아’ 하고 그게 끝이야. 그냥 신경도 안 써! 근데 여기 삼촌들은 막 같이 놀아줘. 아까 봤잖아 내가 줄넘기할 때 옆에서 삼촌들하고 이모들하고 같이 해 주는 거. 우릴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

작은 교회에 적응 못할 줄 알았는데, 애들이 좋다고 하니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했고, 김해교회 성도들에게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에겐 아저씨, 아줌마인데 아이들과 뒤엉켜 놀아주고 하는 모습을 저는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과연 참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맞구나! 입술로만 떠드는 곳이 아니라 진짜 진리를 실천하는 교회가 맞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이런 교회를 이렇게 준비시켜 놓으셨구나! 세속화돼 버린 현대 기독교회의 홍수 속에 이렇게 거룩한 교회가 존재하고 있구나! 저의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몇 번 나오다 보니 교회가 예배 때만 오픈하고 평일에는 비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를 섬기고 계신 형제님에게 당분간 기거해도 되겠느냐고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간 세 군데의 교회를 경험한 터라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대답은 너무 쉽게 “그렇게 하시죠”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히려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마시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물어주세요”라고 하니,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할 분 한 사람도 없으니 이사준비나 하세요”라고 하시더라구요. 이건 뭐지? 뭐 이런 교회가 다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그 형제님께서 교회 단톡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들을 제게 메시지로 전해왔는데, 모든 분들이 만장일치 환영사 일색이었습니다. 저는 또 한번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신 성도분들의 마음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조차도 더 이상 말로만 떠드는 교회에는 신물이 난 상태입니다. 교회는 다녀야 구원받을 것 같으니까 그저 습관적으로 다니고 있을 뿐이지만, 교회의 형편이나 자기의 형편이나 동일한 상태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오락장소, 취미장소, 만남의 장소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말씀과 사랑이 가득한 열한시교회는 하나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화 같은 교회입니다.

이사하는 날 부산에 있는 유일한 지인이 전에 다니던 교회와 이곳의 교회의 이야기를 둘 다 듣다가 눈물을 보이더라구요. 제가 교회로 이사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예 열한시교회 안에서 사탄을 피해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곳이라면 어떤 악도 쉽게 오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부산에 내려온 후 몇 현장에서 시공을 한 것이 인정을 받아서 투자자분들과 동업자분들도 생기고 전시장과 여러 명의 직원을 둔 제법 큰 규모의 인테리어 공사업체로서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두 달 만에 이루어진 이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벌어서 다시 유혹에 빠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돈을 벌게 된다면 열한시교회에 더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데 쓰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늘 나그네라지만 나그네들도 잠시 쉬었다 갈 안락한 처소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돌이켜보면 제가 믿든 안 믿든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곳 김해교회로 데려오기 위해서 많은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서부터 이곳으로 오기까지 불과 두세 달 만에 정상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제게 일어났고.. 그 이유를 여기 와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되기>
지난주 늦은 시간에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가 밤길에 운전을 하는데 순간 너무 졸려서 뒷자리의 아이 녀석에게, “큰일 났다. 아빠 너무 피곤해서 졸려 죽겠다. 안전운전 해야 되는데…”그러자 아들 녀석이 이 한마디로 제 잠을 깨우더군요.
“아빠! 아빠는 나한테 그랬잖아. 아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하나님께 다 맡기고 아무 걱정 말라면서 왜 걱정해? 하나님이 아빠 잠들게 놔두실 것 같아?”
아들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저에게 한마디 더 하더군요.
“아빠는 아빠가 지금껏 안 다친 게 누구 때문인줄 몰라? 하나님 덕분이잖아 정말 몰라?”
이게 아들의 말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구나! 몸에 스치는 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느끼면서, 내 영혼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잊고 살 때가 많았구나!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더욱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손계문 목사님의 설교가 저와 같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말씀이 좋고, 요한계시록이나 여러 성경해석을 잘 해서가 아닙니다. 손목사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더욱 말씀대로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시려 애쓰는 분이시기에 그 영혼을 울리는 감동이 저희에게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손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많이 있습니다. 각자의 형편과 사정 때문에 지금은 결단하고 나올 수는 없을지라도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으며 마지막 때를 위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결단한 영혼들에게 열한시교회는 쉼의 처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지난날의 과오로 제게 묻은 흙먼지가 다 없어지지도 않았고 오랜 세월 동안 저를 조종하며 파멸로 이끌려고 유혹했던 사탄의 장난질에 따라 온 삶이라 죄 된 모양이 아직 남아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 목이 메이곤 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던 십자가의 사랑..! 얼마 전 손목사님이 김해교회에 오셔서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 오시네.. 문 두드리는 손은 못박힌 손이요 또 가시 면류관은 그 이마 둘렸네..” 이 찬송을 불러주시는데 들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 마음의 문밖에서 그 쓰라린 상처의 손으로 제가 그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그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이글을 쓰다 보니 다시금 지금 제 눈가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매일 한 걸음씩 하나님 계신 곳으로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 보겠습니다.
오래 기다려 주셨고, 오래 참아 주셨던 나의 사랑하는 주님!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항상 저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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