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6호 성경Q&A_사람은 출생 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성경Q&A_사람은 출생 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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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사람은 출생 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답변 :  인간은 원죄 (original sin)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원죄의 개념은 카톨릭의 어거스틴이 정립한 개념으로 기독교 사상 가운데 새겨져 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교 사상으로부터 이것을 받아들였는데, 이 사상의 골자는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태어날 때부터, 심지어는 아기가 잉태되는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인간 스스로 혹은 하나님 자신까지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주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구원해 주시고,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예정해 두셨다는 가설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기독교 신자들은 다윗이 드린 회개의 기도를 들어 이 견해를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기 위해서 대개 현대역 성경을 인용하는데 그 번역된 구절 속에는 번역자들의 사상에 내포되어 있는 원죄에 관한 편견이 나타나 있습니다. KJV역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보소서, 내가 불법 중에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시 51:5)

그러나 새 국제역 (NIV) 은 똑 같은 구절을 의역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원죄에 대한 편견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진실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고, 나의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시 51:5, NIV 역자 번역)

히브리 원전에는 어떤 원죄나 범죄에 대한 언급이 이 구절에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을 살펴보면 다윗은 밧세바로 더불어 지은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함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심의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6,7).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이 구절들은 다윗이 원죄나, 사람이 죄짓기를 중단할 수 없다고 믿었다는 사상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반면에,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이 죗된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려고 하는 본질적인 경향이 있음을 지적해 줍니다. 거듭나지 않은 인간은 자연스럽게 죄를 범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되어 버립니다. 인간은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만 책임이 있다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 32:33).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20).

이런 성경 구절들은 원죄라고 하는 잘못된 교리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인간들을 죄인으로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원죄의 사상이 성경적이라 한다면 하나님께서 침례 요한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

우리는 우리가 짓는 죄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였느니라”(KJV, 롬 5:12).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영생을 예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원죄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으로 결국 구원 받을 자와 받지 않을 자, 택자 예정설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종교 개혁자인 루터나 칼빈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이 결정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모든 사람을 그에게로 이끄셨지만, 각 개인은 이미 손에 쥐어진 구원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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