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6호 제4부 놀라운 예언 성취

제4부 놀라운 예언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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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사 45:1-4).

어떤 칭호를 주었습니까?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왕으로 세움을 입을 때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기름 받은 자”란 히브리어로 ‘메시아’입니다.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입니다. 즉 “왕”과 “구원자”란 칭호를 주었습니다. 왜 그런 칭호를 주었을까요? 포로 된 유대민족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고 황폐된 예루살렘의 회복을 명할 왕이기 때문입니다. “고레스”라는 이름도 주고 “왕”이라는 칭호도 주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구원자)”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를 알지 못할지라도 나는 너를 왕으로 삼았노라” 나중에 고레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바벨론을 점령한 왕이 고레스가 아니라 다리오인 것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때에 다리오는 육십이 세였더라”(단 5:30,3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단 9:1).

바벨론은 누가 점령한 것일까요?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 헬라 역사가 크세노폰의 기록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1)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아하수에로)가 딸을 페르시아 캄비세스 1세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여기에서 고레스가 출생합니다. 딸을 페르시아로 시집 보낸 이유는 아스티아게스 왕이 꿈을 꾸었는데, 딸에게서 강물이 흘러나와 전 지역을 뒤덮는 것을 보았습니다. 먼 훗날 심상치 않은 일을 예시해 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1세에게 시집보낸 것이지요.

2) 고레스가 12세 때 아스티아게스가 고레스를 메대로 불러 외할아버지에 의해 양육을 받습니다.

3) 고레스의 비범한 재간과 통솔력에 위협을 느낀 아스티아게스가 고레스를 처단하기 위해 자객을 보냈으나 실패합니다. 이후 고레스는 메대를 페르시아에 병합하고(550B.C.) 할아버지는 선대하여 지방장관으로 보냅니다.

4) 메대와 페르시아는 종족이 같기 때문에 왕실결혼으로 큰 싸움 없이 정권교체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5) 고레스는 메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하수에로의 아들, 외숙부 시악사레스 2세를 즉위시켜 메대의 상징적인 왕으로 남게 하는데 그가 바로 다리오입니다.

6) 이러한 상황에서 고레스가 이끄는 메대 페르시아 연합군이 기원전 539년 10월 29일 바벨론을 점령합니다.

7) 바벨론 정복 후 메대 왕 다리오(시악사레스 2세)를 명목상 통일 페르시아 왕으로 세우고 고레스는 그의 딸 카산다네와 결혼하게 됩니다. 메대인에 대한 유화(柔和)정책으로 62세의 장인(단 6:31)을 명목상 왕으로 앉혔고 2년 뒤 장인이요 외숙부인 다리오가 죽자 고레스가 집권(537 B.C.)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바벨론에 포로로와 있습니다. 다니엘서 9장에 보면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70년간 포로 생활할 것이라는 말씀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오 원년(538 B.C.)의 사건을 기록합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 9:2,3). 바로 이 기도 때문에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지요. 다니엘서 1장 21절에 보면, 다니엘은 다리오왕을 지나 “고레스 원년(537 B.C.)”까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10장 1절에 보면 고레스 3년에 있던 일을 기록했습니다. 성경에 잘못 기록한 것일까?

다니엘에게 ‘고레스 원년(537 B.C.)’은 아주 인상 깊은 사건이 있던 해였습니다. 다니엘이 고레스 원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해(年)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고레스 원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고레스가 집권한 후 정치 자문을 위해 누구를 불렀을까요? 당연히 선왕 다리오 때부터 신임 받던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총리였고 80이 넘은 경험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유대 사람이기 때문에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이방국가입니다. 그래서 경계심 없는 정치가였습니다. 특별히 1년 전 사자굴 사건을 전해 듣고 많은 감명을 받았기에 다니엘을 꼭 만나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을 부릅니다.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고레스를 만나러 갈 때 뭘 가지고 가겠습니까?

이사야서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다니엘은 그 예언을 압니다. 이사야 두루마리를 가져가서 고레스 왕을 접견하고, “왕이여 평안하옵소서. 제가 왕께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44장부터 45장까지 쭉 펴서 읽어 줬을 것입니다. 고레스가 놀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사 45:1,4; 44:27).

자기 이름과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어떤 방법으로 승리할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고레스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까요!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렘 25:11).

성경 예언은 이렇게 성취되어야 했습니다. 유대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포로 생활을 70년 동안 할 것이고 그 후에 황폐된 예루살렘을 중건하게 될 것이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말씀(605 B.C.)하셨습니다. 그래서 70년이 지나면 포로 귀환 명령과 예루살렘 중건령(令)을 누군가 내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택하신 것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 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44:28).

‘강물을 마르게 하고, 고레스라는 이름도 주고, 왕의 칭호도 주고, 열국을 정복할 수 있도록 자기를 안내하고’ 그래서 바로 자기를 통해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성전의 기초를 다시 쌓으라고” 한다는데 어느 누가 그것을 부정하며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놀라고 감동되었을까요! 다니엘은 고레스에 의해 1차 석방령이 내리는 그 감격을 기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고레스 원년까지 있으니라’라고 굳이 한 마디를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고고학의 도움으로 Cyrus Cylinder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원통에는 고레스가 기원전 539년에 어떻게 바벨론을 정복했는지 또 성소 재건과 예루살렘 포로귀환에 대하여 적고 있습니다.

“나는 고레스, 바벨론을 정복한 왕이다 … 나는 오랫동안 황폐되어 온 성소들과 그 안에 있던 기구들을 티그리스강 저편에 신성한 도성들로 귀환시켰으며 … 이곳의 주민들을 모아서 저들의 거주지로 귀환시켰다.”

이 Cyrus Cylinder의 내용이 성경에도 그대로 기록돼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스 1:1-3; 참조 대하36:21-23).

CyrusCylinder의 내용과 동일한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레스가 무엇을 읽고 저렇게 말했을까요? 물론 이사야서를 읽고 한 말입니다. 150여 년 전 본인에 대한 예언이 정확히 성취되었는데 어찌 부인할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이 하나님의 계획아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고레스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성서 비평가들은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의 정책에서, 포로 된 백성을 놓아주고 종교적 자유를 선언했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라고 하면서 에스라의 기록이 잘못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의 실린더가 발견된 후 더 이상 에스라의 기록을 조롱할 수 없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실린더입니다.

고레스 왕은 조서를 악메다 궁에서 반포했습니다.

“메대도 악메다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스 6:2).

예루살렘 중건에 대한 세 차례의 조서가 있습니다.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의 재건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 방해하고 고레스(559-530 B.C.)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닥사스다 1세[530-522B.C., 캄비세스(Cambyses)]에게 금지 조서를 내려주기를 바라는 상소문을 올렸고(스 4:7-16), 그래서 다리오(522-486 B.C.)왕 2년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그 후 학개를 비롯한 사람들이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성전 재건을 시도하자(스 5:1-2) 이번에는 또 다른 무리들(스 5:3 참고)이 다리오 왕에게 성전 건축 금지 조서를 내리도록 상소하였기에 다리오는 고문서들을 살피다가 악메다 궁에서 고레스 실린더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레스의 명을 확인하고 오히려 재건 자금까지 주며 허락하는 조서를 내렸는데, 2차 조서를 내릴 때 바로 이 고레스 실린더를 굴리면서 인을 찍었습니다.

고레스는 다니엘로부터 페르시아가 영원할 것이 아니라 200여 년 후 그리스의 젊은 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그의 무덤 비문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고 아시아의 주인이다. 그대가 오리라고 예상하고 오래 전부터 여기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라는 내가 이룩한 것이나… 이제 내 무덤에 한줌의 흙을 던져다오.” 헬라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이 무덤 앞에 당도했을 때 지석(誌石)에 있는 글을 읽고 그의 망토를 벗어 무덤에 덮어주며 머리를 숙여 경배하였다고 합니다. 고레스는 제국 창건자 이상의 존재로 역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인품은 그리스인들과 알렉산더 대왕에게 영향을 미쳤고 로마인들이 전하는 전설을 통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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