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5호 제5부 근심하며 삶을 살지 말라

제5부 근심하며 삶을 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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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를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죄를 지고 가는 예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근심하며 삶을 이어가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며 용서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분은온 세상의 죄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연약하고 곤란을 당하는 영혼이 예수님께 와서 의지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단순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근심하며 삶을 이어가지 마십시오!

피뢰침이 뭔지 아시지요? 번개가 칠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피뢰침 말입니다. 그 밑에 피하는 사람들은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한 피뢰침이 되셔서 죄의 결과인 사망을 가슴으로 대신 막으시고 십자가 밑에 피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계시며, 우리가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킬 때 용서하시기 위해서도 항상 준비하고 계십니다.우리가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사랑해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승리자 이상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기 위해 항상 완전한 준비가 되신 분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형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장 흉악한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음을 증거하는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는데 완전합니다. 그 십자가의 능력은 마침내 우리를 승리자 이상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여기 아주 영감적인 글을 소개합니다.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시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 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 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리셨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우리 인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누구를 위함이라고요? 그대를! 여기 그대에는 내가 포함되나요? 아니면 나는 제외하고 다른 “그대들”인가요? 나를 포함한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은 성난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거품이 이는 파도 위를 걸으셨으며 귀신들로 떨게 하시고 질병이 물러가게 하셨으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던 그분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십자가 위에 바치셨습니다. 이것은 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를 낙심시키고 용기를 깨뜨리기 위해 사탄이 부정적인 암시를 마음에 제시할지 모릅니다. “넌안돼. 넌 자격이 없어. 진리를 안다면서 죄를 지었잖아. 너무 뻔뻔해” 그런 암시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의심이라는 악한 손님을 받아들이지 마시고 구주의 희생과 사랑을 바라보며 마음에서 그것들을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선한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다고 속삭이는 사탄의 말을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세요. 만일 우리가 그때까지 기다린다면 결코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더러운 옷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주장하세요. 원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하십시오. 다윗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도록 하십시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 아직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눈 부릅뜨고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가혹한 분이 아닙니다. 부모는 못난 자식에게 사랑이 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역시 죄 많은 사람에게 관심이 더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많은 곳에 돕는 은혜가 더한 것입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메추라기의 교훈

아무리 이렇게 얘기해도, “내가 용서받으려면 그래도 뭔가 자격을 갖춰야 하지 않나,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셔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농부가 메추라기 한 떼를 시장에 가져와서 발목에 줄을 매어 막대기에 묶어 놨습니다. 메추라기들은 막대기를 돌면서 슬프게 계속 걷고 있었습니다. 한 신사가 측은한 마음이 들어 “내가 그것들을 다 살 테니 자, 이제 그 새들을 다 놓아 주시요.” “뭐라고요, 선생님?” “새들의 줄을 풀고 그들을 놓아 주시오. 그 새들을 모두 자유케해 주시오.” 농부는 새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 메추라기 떼들은 계속적으로 원형에서 돌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새들을 억지로 날려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날아가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돌기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몸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아직도 묶여있는 것처럼 원형을 계속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에 나오는 새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자유롭게 날기엔 내가 너무 뻔뻔한 것 같아요. “저 신사가 나를 해방시켜줄 리가 없어.” “날아봤자, 어차피 또 죄짓고 추락할테니 그냥 계속 돌고만 있자” 그렇게 생각하고 마냥 죄의 자리에 앉아있지는 않습니까?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 능력”이라고 찬송은 부르는데, 그건 가사일 뿐이지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지는않습니까?

잊어버리시는 하나님

이런 낮은 자존감은 사탄이 사용하는 치명적인 심리적 무기입니다. 결국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에 짓눌리는 감정의 악순환을 계속적으로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다시 돌아와서 계속 빙빙 돕니다. 기쁨이 없고, 만족이 없고, 평안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활이 아닙니다. 사탄의 심리전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대하시듯 여러분 자신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듯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믿음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질문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뭔가를 잊어버린다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이지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잊어버리기로 작정하시면 그분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하나님은 그 죄인의 죄를 용서와 함께 잊어버리십니다.

잊어버리시는 하나님!

어제 죄를 지었나요? 오늘유혹에 넘어졌나요?

무엇보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운가요? 용서를구하기엔 내가 너무 뻔뻔한 것 같은가요?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온종일 서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 나가기를 망설이지 마십시오! 여기 집나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심정을 그린 시가 있습니다.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지난밤에는 무서리(첫서리)가 남새밭(채소밭)을 덮었다.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송아지 팔은 고리짝(궤짝)의 돈이사 없다가도 있지만

병정(軍)에서 성(兄)잃고 니는 하나뿐인 소중한 내 자슥(子息)

해거름 신작로 길 돌아 넘어 오는 건 짐 실은 소달구지

오늘도 니 방에다 군불 지펴 놨는데

지두리는 초저녁은 너무 짧고 밤은 또 왜 이리 속히 오는지…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니 돌아올 때는 초승달 숲 너머 지고 삼태성 하늘 가운데 자리할 무렵

마루 밑 검둥이는 웃마을 새 집에 주고 니 집나간 그 날부터 밤낮 사립문 열어 놓았다.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오늘밤은 니 돌아오그라, 이눔아!

첫서리가 내리고 이젠 날도 추워지기 시작하는데, 집 나간 아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송아지 판 돈 다 털어서 나갔지만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그런 것이다. 걱정하지 말아라. 전쟁터에서 니 형 죽고 이제 너는 하나뿐인 아들인데, 돌아오너라 이눔아!

해가 질 때까지 저기 신작로에 나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종일 기다려도 고개 넘어 오는 건 짐 실은 소달구지 뿐 니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

언제라도 오면 따뜻한 방에 몸 녹일 수 있도록 매일 저녁니 방에 군불 지펴놨다. 니 집에 들어올 때 검둥이가 짖어서 못 들어 올까봐 윗마을에 줘버렸다. 걱정 말고 오너라. 니 집나간 그날부터 밤낮 대문 열어놨으니 언제든지돌아오그라, 이눔아, 오늘밤은 니 돌아오그라!

여러분, 자식을 향한 여러분의 심정이 이러지 않습니까? 아무리 속 썩이고, 아무리 반항해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들어오는 자녀를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마음으로 감싸주지 않습니까? 그게 자녀를 향한 부모 마음 아닌가요?

죄와 싸우느라 상처받고 피 흘리고 지쳐 있습니까? 난 안된다고 포기했나요?

오십시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이눔아 니 돌아오그라” 부르고 계십니다.

일어나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갑시다. 그렇게 하면 주님은 멀리까지 나와서 우리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귀는 통회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 열려 있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싹트는 그 순간에 그것을 아시고 성령께서 마중 나오십니다. 기도가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마음의 소원이 알려지기도 전에그 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은혜를 만나기 위하여 나옵니다.

어떠한 말로 표현해도 하나님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지 못할 죄인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이젠 죄책감과 죄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께 오십시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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