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5호 제4부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제4부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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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사탄이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은 잘 용서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을 용납하기에는 너무 인색합니다. 왜 그런가? 자신이 예수님을 너무 많이 실망시켜드렸거든요. 그래서 “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세상에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하다니…, 하나님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저를 그냥 죽여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기도 합니다. 저를 죽여주세요? 예수님을 살인자로 만들 작정인가요? 그러지 말고 머리를 들고,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죄에서 시선을 돌이켜, 높이 들리신 구주를 쳐다봅시다. 독사에게 물린 곳을 보지 말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쳐다보고 소망을 가지도록 합시다.

방수 공사와 아들

오래전에 옥상 방수 공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업자를 부르면 비싸기 때문에, 방수 페인트를 사서 직접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하다 보니 오전에 시작한 일이 저녁때가 다 되어가는데도 마쳐지질 않네요. 저희 집 아이가 아빠를 돕겠다고 페인트 붓을 들고 이리저리 칠합니다. 내심 못마땅하지만, 나름 도와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는 아이를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페인트를 칠해 놓은 곳을 아이가 밟았습니다. 내심 못마땅하던 차에 기회다 싶어, “밟으면 어떡하냐? 그만하고 저리 가라”고 감정 섞인 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순간 ‘아이고 하나님, 제가 넘어졌네요.’ 그때부터 몸이 힘든 것은 둘째 치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이현아, 아빠 좀 도와줄래요?” 했지만, 이미 주눅이 든 아이는 “아니요. 그만할래요.” 그러면서 옥상 한쪽 구석에서 혼자 놉니다. 빨랫줄을 감기도 하고, 빗자루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조용히 내려갔습니다.

저녁 잠자리에 들기까지 마음이 무척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려고 누워있는 아이 옆에 함께 누워 “이현아, 아빠가 오늘 이현이에게 잘못한 것 있으면 용서해 줘요.” 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러자아이는 제 양 볼을 쓰다듬으며 “없어, 그런 거 없어. 우리아빠 오늘 고생했쪄요. 아이고 얼굴이 많이 상했쪄요. 힘들었찌요.” 9살 사내아이. 평소엔 발음이 또박또박한데, 온갖 애교를 섞어서 아빠에게 얘기합니다. “아빠는 예수님이에요. 엄마는 천사고, 힘센 천사^^.”

아이는 정말 오후의 일을 잊어버린 것일까요? 아니지요. 아빠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아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아담의 때로부터 인류 마지막 인간까지 그들의 모든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시고 다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뭔가를 잊어버린다는게 가능할까요? 네,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잊어버리기로 작정하시면 그분의 기억에서 지워져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실 때, 그 죄인의 죄를 용서와 함께 잊어버리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용서는 얼마나 쉽겠으며 용서받는 그 사람은 얼마나 평안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신 후, 전혀 죄를 짓지 않았던 것처럼 여겨주십니다. 아니 여겨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아, 네가 무슨 죄를 지었지? 난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사44:22,23).

이 얼마나 기쁜 찬송입니까!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들아, 산들아, 나무들아 노래할지어다!

왜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내 죄를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안개의 사라짐 같이 지워버리셨단 말입니다! 하늘에는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신상명세서가 있습니다. 기록책이라는 그 신상명세서에는 제가 각 계명을 범할 때마다 표시를 해 놓을 수 있는 칸이 마련돼 있을 것입니다. “손계문은 제1계명을 몇 번 범했으며, 제2계명을 얼마나 범했고, 제3계명은…, 제4계명은…그러므로 손계문은 영원한 멸망에 처해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죠. 얼마나 공의로운 심판입니까! 그런데 제가 주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에, 주님은 저의 신상명세를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커다란 도장에 당신의 피를 듬뿍 묻히시더니 페이지마다 ’용서됨’이라고 “쾅 쾅” 찍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그런 쓰레기를 하늘나라에 두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이후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손계문의 신상명세를 보고 싶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상명세서를 없애 버리기 전에, 사탄은 우리를 속이기 위해 그것들을 한부씩 복사해 놓았습니다. 물론그것은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낙심시키고 속이기 위해 그것들을 사용합니다. 그럴 때 낙심하지 말고 찬양을 부릅시다!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양 보혈을 흘렸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사탄의 심리전술: 죄책감

죄책감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크신 분입니다.

자기의 생각에 갇혀 있지 마시고 그것을 떨쳐버리십시오! 그것이 믿음이고 믿음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사 46:3,4).

세상에!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업고 다니시고, 안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기저귀 갈아주시고, 자장가도 불러주고, 트림도 시켜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하셨는데, 우리가 늙어도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너의 아비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를 업고 다니시며 돌봐 주신다니요!

혹시 지금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까? 돌아오십시오!

우리가 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방탕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오랫동안 그분을 떠나 살았을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지금이라도 맞아 주실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임금께서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그대를 초청하십니다.

오! 돌이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유한한 사람이 피차 대우하는 것처럼 우리를 대접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의 생각은 자비와 사랑과 지극한 긍휼의 생각이십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복된 보증을 빼앗으려 노리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서 한줄기의 희망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하는 자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이렇게 주장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로 하여금 살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나에게는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가 계시니 내가 비록 그의 사랑을 저버리고 그가 내게 주신 축복을 낭비하였을지라도 나는 일어나 내 아버지께로 가서 말하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탕자는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유산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탕자의 이야기에서 그 주제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용서? 아버지의 사랑? 탕자의 회개? 다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 더 추가하자면 ‘배짱’이며 좀 더 좋은 말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오 내가 더 거룩해져야만, 착해져야만 하나님께서 용납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진짜 믿음은 현재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누가 봐도 나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아니,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아버지한테 나가?’ 하더라도 약속에 의지하여 나갈 수 있는 배짱, 그분의 은혜를 담대히 구하는 배짱입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눅 15:18-20)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인정 깊고 감동적인 이 비유라도 하늘 아버지의 무한하신 긍휼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렘 31:3)라고 하셨습니다. 죄인이 재산을 낭비하는 동안에 그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을 심히 사모했습니다.

만약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고 돼지를 치다가 병을 얻어죽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내가 아버지 말씀 안 듣고 집을 나와서 하나님께 벌을 받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크게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버지는 여전히 목메어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성령의 호소가 있습니까?

지금 일어나 아버지께 가십시오.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기를 기다리시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우리 앞에는 성경의 귀한 약속들이 있습니다. 어찌 의심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불쌍한 죄인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그 죄를 버리려고 원하는데 주님께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발 앞에 나오는 자를 엄히 물리치시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생각은 버리십시오! 우리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이러한 생각을가지는 것보다 더 우리들의 신념을 손상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보다 더 강하고 간곡한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사랑에 반응하도록 하기 위해 마중 나오신 성령의 은혜와 감동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혹시 여러분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그 사람이 잘못을 구한다면 언제든지 그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줄 준비가 돼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이만큼 아팠으니까 당신도 나처럼 아파봐.” 할 것입니까?

오히려 그 사람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하는게 그리스도인 정신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도 그렇게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을 우리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탕자를 집으로 이끈 것은 아버지의 관대함과 사랑이었음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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