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5호 제2부 용서가 무엇입니까?

제2부 용서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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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정의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용서는 창조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면하게 해주는 사법적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합니다.

그래서 참된 용서를 받으면 악한 사람이 의롭게 됩니다!

생애에 변화가 옵니다!

구부러진 철사를 반듯이 펴듯이 용서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용서를 받은 막달라 마리아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녀는 예수님을 가장 신실히 따른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며 자기희생적 사랑과 헌신으로 예수님의 용서하여 주신 은혜에 보답했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지었을 때 용서를 쉽게 생각하고 또 죄를 지었을 때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마음이 없이 당연하게 용서를 주장하는 사람은 용서받은 자의 삶이 아닙니다. 용서를 남용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용서를 죄를 허용해주는 면죄부로 삼았기 때문에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용서를 받으면 죄를 떠나게 됩니다.

용서는 능력입니다.

용서받은 사람의 결론은 재창조입니다.

용서는 과거의 죄를 다 씻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는 힘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은 남을 진정으로 용서할 줄압니다.

내게 큰 고통과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왜 용서하지 못하는지 아세요?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진실로 용서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용서를 받는 경험이 부족합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용서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용서받은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승리자의 삶을 살겠습니까?

용서받지 못하니 늘 죄인이고, 구원의 기쁨이 없으니 늘 패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악의 짐을 담당하셨으며,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말씀하십니다. 변명으로 자신의 죄를 감소시키고자 노력하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나타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기꺼이 굴복시키되 예수님의 희생에 근거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도, 용서해 줄 사랑의 마음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양면성을 보게 됩니다.

한 부류는 용서를 남용하면서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다른부류는 “나는 용서받은 자인데, 이제 의로워져야 하고, 거룩해져야하고, 이기고 또 이기는 자가 돼야 하고, 승리는 나의 것인데….” 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실수하게 되지요. 연약함으로 인해 죄를 짓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이기심과 교만, 시기와 질투가 머리를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건 내가 혐오하는 죄들인데, 왜 이런 생각이 나는 거지? 용서는 재창조이고 용서는 능력인데, 나는 이기고 또 이겨야 하는데, 왜 나는 실패한 것인가? 나의 회심과 거듭남은 착각이었는가? 나의 용서는 기만이었는가?”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러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의심하여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번은 제게 상담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은 늘 수직상승만 하시죠? 저는 왜 이렇게 자주 실패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고민은 전화하신 분만의 고민이 아니라 여러분도 동일한 질문을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남의 경험 후에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수직상승만 하시나요? 늘 고공행진만 하고 계시나요? 매일 이기기만 합니까? 네, 물론 이기는 자들만 하늘에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자로 서게 될 사람들은 생각으로도 범죄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용서의 능력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재창조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만듭니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의 경험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구원하고 용서하신 사랑에 대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매일의 생활에서 준비되고 있으나 완성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 짐승의 표의 환난 때에 우리는 그 결과를 부분적으로 보게 될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영광스런 몸으로 홀연히 변화될 때에 완전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성경에서 의인은 전혀 넘어지지 않는 완전주의의 완전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의인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회개하여 용서를 얻은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죄 짓지 않은 자가 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여 용서받은 자들이 가는 곳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혹시 실수했나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 뜻대로 살고 싶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넘어졌나요? 유혹에 쓰러졌나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가서 다시 용서받으면 됩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진리는 너무 간단해요! 너무 쉬워요! 어떤 분들은, “아, 잠깐만요. 그거 죄짓고 용서받고 죄짓고 용서받고 그거 아닌가요? 그거 값싼 은혜 아닌가요? 그거 자유주의 신학, 니골라당의 가르침 아닌가요? 그렇게 표준을 떨어뜨려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질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출발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회심의 경험 이후 성장의 과정에서 실수하는 것과 회개와 회심의 경험 없이 매 순간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서 용서받은 자의 변화된 삶,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 집중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절없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매일 승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몰입하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 죄인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용서받는 자의 입장 말고, 용서하는분의 입장,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우리 생애에 쉼이 있고 평안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는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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