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3호 제1부: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제1부: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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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 그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라도 함께 갈 것입니다. 수많은 행성과 태양계와 은하계를 지나 우주 끝까지 가시면 거기까지 함께 갑니다.

저는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좌로 가실 때 거기까지 함께 갑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데리고 우주 거민들에게 방문할 때 주를 따라가기 원하십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우주여행을 할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도착한 하늘에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부터 따르기 시작해야 합니다.

말구유에 태어난 예수님의 비천함과 겸손을 보면서도 주님을 따르기로 선택하겠습니까?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자라나는 어린 예수가 매일 고된 일과를 보내면서도인내와 사랑의 모본을 보이며 사는 것처럼 따라 가겠습니까? 겟세마네에 이르고 폭도들에게 잡혀 법정에 송환되고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거짓 고소를 당하며 고난 당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까지도 따라가겠습니까? 갈보리로 끌려가셔서 하늘과 땅 사이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곳에도 가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지상 생애 마지막 장면들은 마지막 시대에사는 우리가 경험해야 할 것들과 유사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이르러 올 것인지 깨닫고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두 개의 위기

인류 구원의 계획에는 두 개의 특별한 위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께서 33년 반의 생애를 마치실 때 가지셨던 위기요, 다른 하나는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가 경험하게 될 최후의 위기입니다. 종결되어가는 인류 역사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경험하게 될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곧 직면하게 될 위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위기가 될 것입니다. 이 위기는 지상에만 국한된 위기가 아니요, 온 우주에 미치는 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늘의 천사들은 사탄이 땅으로 내어쫓김을 당했을 때 사탄이 행했던 은밀한 죄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의 악한 속성과 죄의 결과가 이 땅에서 온전히 폭로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공의로우심이 옹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당했던 반대를 만나야하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이 시대의 남은 백성에 대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따라가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위기를 지켜보기 위하여 온 우주의 거민들이 함께 모였고 오늘날 역시 특별한 관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심을 가지고 천사들과 온 우주 거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갑자기, 뜻밖에 그런 위기를 당하신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때가 이른 줄을 아시고”(요 13:1)라고 기록되었고,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3: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것에 대해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가이사랴 빌립보에 계실 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말을 들으시고 나서 “이 때로부터 …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마 16:21)셨습니다.

십자가 위기 앞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장래 사건을 펼쳐 보이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셨습니다.

갈릴리로 오셔서도 다음과 같이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마 17:22,2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하리니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마 20:18,19).

그런데 다음 절에서 제자들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얼마나 이해가 부족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0,21).

주님이 잡히시는 그 밤에도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났습니다(눅 22:24). 예수님은 곧 악한 자들에게 잡혀 채찍에 맞고 못 박히셔야 할 터인데 제자들은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냐는 권력다툼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돌아가셨다가 무덤에서 다시 부활하실것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고자 힘썼지만 제자들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시적 해방만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굴욕적인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의 때가 이르자 그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이 발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마치 그분께서 그들에게 미리 경고하지 아니하신 것처럼 그들의 희망을 완전히 깨뜨려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알려주지 않은 것처럼 제자들은 절망하고 믿음에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미래가 펼쳐졌던 것처럼, 우리 앞에는 예언으로 미래가 분명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의 환란에 대한 사건들이 분명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기독교는 마치 이 중요한 진리들이 전혀 계시되지 않은 것처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성경에 뒷받침이 되지 않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또 교단/교파마다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동 가운데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들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혼탁하고 암울하며 위태로운 이 시대에 빛으로 인도하는 분명한 나침반을 얻게 될 것이며, 오순절 사도 시대 이후 경험하지 못한 부흥을 맛볼 것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든지 제자들처럼 절망에 빠지는 길을 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버리겠다고 말씀하셨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각 사람에게 시험이 다가올 때가 머지 않았고 짐승의 표가 곧 우리에게 강요될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세상의 요구에 양보하고 습관에 순응해 온 사람들은 조소와 모욕과 투옥과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환란에 넘겨주는 사람이 있고 넘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미움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든지 유다가 간 길을 가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배반하든지 배반당하든지 둘 중 한편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애를 통해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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