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21호 제4부: 율법주의에서 치료받는 길

제4부: 율법주의에서 치료받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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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어떤 깨달음이 자신에게 영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들에게 강요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표준이 되지 못하며 모든 사람도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은 동일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가장 감동을 주는 비유가 있다면 바로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멀리 외국에 가서 허랑방탕한 후에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온 둘째 아들의 이야기지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설명해주시는 것이 바로 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탕자의 비유에서 나온 아버지와 같이 하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건강, 시간, 능력, 신체, 지혜 등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가지고 허랑방탕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심이 무뎌지고 사랑이 식으면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것을 느끼고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믿음이 아주 좋고 그렇게 강조하며 살고 있는데, 가족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감화를 끼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가족과 주위의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아합니까?

어린아이들이 여러분에게 달려오길 좋아합니까?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에게 부담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라갈 때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참 편하고 좋은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3년 반동안 함께 살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하나가 되셨는데 우리가 있는 처지 밑바닥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까다로운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부족한 자들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고,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무시당하던 세리와 창기들 그리고 이방인들과 어울리시고 도움을 주셨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셔서 스스로도 하나님의 법을 지켜 우리의 본이 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 10)

예수님께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시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마음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

우리가 죄에서 용서받고 치료받았으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고, 기쁨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가족들과 친구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까다롭게 따지기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기질과 성격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예수님과 같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우리가 예수님처럼 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먼저 된 다음에 다른 사람들이 까다롭게 생각할 만한 것도 사랑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진정한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을 때 겉으로는 우리가 성경을 잘 가르치고, 잘 전하는 것 같아도 우리의 변화되지 못한 성질들이 자꾸 나오게 되고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 드러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호소하고 기도할 때, 영혼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마음을 열고 굴복하는 일이 적은 이유는 바로 우리 속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경험을 해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영혼을 보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는 영혼을 우리가 억지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추수하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영혼들을 만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주님 안에서 변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시대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영혼들을 모아놓으면 그 사람들에게 가서 다른 복음을 전한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막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받으려면 율법적인 행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늘날도 사도 바울 당시에 살던 유대인들과 같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복음인 율법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은혜로 영혼들을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때 자신도 모르게 율법주의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무감각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실 말씀이 많았지만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님께 마음을 바치고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이 와서 우리의 등에 기대거나 우리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쉴 수 있는 은혜스럽고 평화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고쳐줄지라도 그 은혜와 사랑에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며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해하고, 죄를 승리하고, 온전한 품성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 마음 가운데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육에 속한 마음에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하나님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계획보다 더 큰 호소력을 지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죄를 범한 후에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화가 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옷은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주어진 귀한 은혜의 시간을 바쳐서 죄의 결과로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려고 무화과 잎을 꿰매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자아는 의를 이루기 위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단순히 믿음으로 의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게 보입니다. 의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공로로 의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치료받는 길은 하나님의 구속함을 이해하고 감격하는 길입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깨닫는 것만이 우리의 죄를 치료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지라도 날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인간되셔서 내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므로 나는 죄에서 치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으로 용서받은 자는 자기의 치욕스러운 과거와 무서운 경험을 잊을 수 없습니다. 비록 용서받았으나 자신을 실족케한 품성의 약점을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 36:31) 는 말씀처럼 다른 사람을 보며 고쳐주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을 밉게 보며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죄인의 입장에 설 때 판단하고 고소하는 일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내 죄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신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체를 정결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감동적이고, 능력이 있어서 내 생각을 변화시키고 씻어 나를 정결케 하실 뿐만 아니라 내 주위까지 정결케 하십니다. 그래서 죄로 인해서 물들었던 죄인이 예수님의 은혜로 정결케 함을 받으면 내 주위가 정결케 됩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은혜로 정결케 되면 우리 주위에 있는 가족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교회까지 정결케 되는 은혜스러운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치료가 필요합니다. 주님 닮지 못한 모든 부분이 주님의 은혜로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죄에서 해방되고 치료받은 자 즉 의로워진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진정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치료받아서 우리가 믿고 생활하는 모든 생애가 예수님 중심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처럼 은혜롭고, 자비롭고, 신실하고, 철두철미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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