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04호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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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나는 데카르트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물질적인 지식의 영역이나 사실에 대한 과학지식의 영역에서는 시간, 공간, 운동, 인과관계라는 이론이 탁월한 성과를 냈고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도덕적 가치와 영적인 영역, 즉 사랑과 종교와 인간관계에서 이 방법은 부적합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이감, 경외감, 도덕적 본성은 수학적 계산보다 훨씬 미묘하고 고귀한 재능이자 고차원의 이해입니다.

데카르트의 첫 번째 오류는 인간이 인지적 추론을 통해 그 존재의 증거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성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방법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종교는 거의 수학의 한 분야로 전락해 윤리나 도덕,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과학의 영역에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피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과 선악 등은 계량기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력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믿음으로 보아야 합니다.

데카르트의 두 번째 오류는 물질과 정신을 분리한 것입니다.

이런 철학이 기독교 안에 들어와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허공을 떠돌거나, 또는 즉시로 천국과 지옥을 간다는 이교사상이 기독교 속에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런 사상은 데카르트 이전에 윤회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피타고라스와 이집트를 방문한 이후 자신의 신앙으로 만든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의 수제자 플라톤이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열렬한 주창자가 되어 [파에돈]이라는 그의 책은 영혼불멸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배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여러 중세신학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513년 교황 레오 10세는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를 통해 “영혼은 불멸하며,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이 부활 때까지 잠잔다고 가르치는 이단들을 징벌해야 한다.”고 반포합니다. 슬프게도 로마 카톨릭의 이 가르침을 오늘날 개신교회가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오스카 쿨만은 그의 저서 “영혼의 불멸인가 부활의 신앙인가”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 교회의 소망과 영혼불멸에 대한 헬라사상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 영혼불멸을 믿는 헬라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의 부활 설교를 받아들이기가 가장 어려웠다 … 신약에는 ‘영혼불멸이냐? 죽은 자의 부활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가르침은 결코 신약의 가르침과 조화될 수 없다. … 그리스도교회가 영혼불멸과 부활신앙을 연결 지어 놓음으로써 빚어진 신학적 착오와 일반 평신도들의 혼동은 나로 하여금 침묵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영혼불멸의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인 부활신앙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오늘날 기독교회는 고린도전서 15장을 플라톤의 철학으로 희생시켰는데, 본인은 이 사실을 도저히 덮어둘 수 없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지금 천국에 가 있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간의 철학,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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