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 손계문 목사 설교모음 57.예수님과 두 아들(율법과 자유)- 손계문 목사

[설교말씀] 57.예수님과 두 아들(율법과 자유)- 손계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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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비유는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던 성경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른 관점 그러니까 큰아들을 주인공으로 우리 마음속 큰아들에 대해 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감격적인 어조로 예수님은 집을 나간 탕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성애를 그리 놀라워할게 뭐 있습니까? 세상에도 그만한 아버지들이 많고 많을 텐데 말입니다. 또 그만한 사랑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보다 감동적인 얘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사실 이 비유가 말하는 것은 불평꾼! 바리새인들! 맏아들! 율법주의자들! 바로 이들이 이 비유의 요점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큰아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안에 있으니까 최소한 탕자는 아니죠. 그러면 뭔가? 큰아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사실 큰아들은 집안에 있는 탕자였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은혜로 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자칫 큰아들 신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올바로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철저히 순종하며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너무나 거룩하고 경건해서 감히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 보이는 그 사람들이 하늘에 도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큰아들과 같은 신앙, 삯을 위해 섬기는 신앙, 천국이라는 보상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무정한 신앙, 남을 판단하기를 쉽게 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탄을 경배하는 신앙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아도 다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래 믿으나 저래 믿으나 구원받기는 매 한가지라는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구원받으니 탕자가 좀 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닙니다.

큰아들은 단순히 자신의 유익을 위해 쾌락을 절제하며 살아온 것뿐이었습니다. 사랑에 반응해서 사랑의 법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라, 규율과 원칙과 표준과 계명과 율법의 조항들에만 충실한 법아래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은혜는 없고,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기만 하는 철저한 노예정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호소에 형은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을까요? 자기의 시기심과 완악한 마음을 회개했을까요? 이 점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비유는 아직도 계속 진행중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호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이 호소는 지금도 진행중이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들에 대하여 비난하는 태도를 가질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따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자리에 우리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이기심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질투와 판단과 무정함의 냉랭함이 녹아 내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시는 것과 같은 시선으로 우리도 그러한 동정심을 갖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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