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TV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진리대로 생애 할 수 있도록 도와 줌으로써,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건강한 삶을 누리며, 나아가서는 구원과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진리의 빛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중단되어버린 종교개혁을 완성시키며 초대교회 당시 있었던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초교파 기독교 선교센터입니다. 세속과 비진리가 교회 안에 밀려들어오는 이 시대에 진리의 울타리로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었고 종교개혁자들이 목숨 걸고 지켰던 그 순결한 복음으로의 회복을 외치는 하나의 물결, 하나의 운동이며, 마태복음 20장 포도원의 비유에서 일을 마치기 위해 맨 마지막에 부름 받은 11시 일꾼입니다.
혹시 왈덴스인(Waldenses)들을 아십니까? “교황권의 대낮은 세계의 한 밤중이었다”는 역사가 J.A. Wylie의 표현처럼 로마 천주교회가 다스렸던 천 년의 기간은 참으로 영적인 한 밤중이었습니다. 왈덴스인들은 천주교회의 비성서적인 교리들(연옥, 화체설, 교황무오류, 마리아숭배, 영혼불멸, 고해성사 등)을 부인하고, 성경만을 삶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카톨릭의 혹독한 핍박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유럽의 22개국으로 번져나갔습니다. 이들이 종교개혁의 씨를 뿌린 사람들이며, 이태리에 남아있는 최초의 개신교회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왈덴스인들의 순수한 신앙을 이어받아 보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칼빈 개혁의 유산인, <칭의-행위로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과 죄인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성서적인 진리라고 인정하는 동시에, 감리교의 요한 웨슬리가 칼빈의 예정론에 대항하여 이룩한 <자유의지>와 <성화-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생활>을 존중합니다. 또 루터교의 핵심인 만인 사제(롬 5:17), 즉 천주교의 고해성사는 잘못되었으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기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에 잠기는 침례와 회중파 청교도가 주장했던 <정치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한다>에 동의합니다. 또한 재세례파 개혁의 유산인, 사람이 죽는 즉시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상태(잠)에 있다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한다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메노나이트 재세례파의 건강절제생활에 따라 술과 담배 등을 멀리합니다.
아십니까? 성경의 진리들이 교파와 교권싸움에 묻힌 채 피 흘렸던 지난 과거를 말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영국 국교에서 출교당해 감리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 방법론자(methodist)라는 놀림을 받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감리교(methodist)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후손들은 감리교인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카톨릭으로부터의 핍박이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교리적인 문제로 칼을 든 것이지요.
저희는 이러한 교파와 교권의 벽을 허물고자 합니다. “오직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진리라면 “아멘”하며 받아들이고, 편견과 이기심을 떠나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자는 운동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거기서 나오고 거기로 돌아가야 하는 삶의 최초와 최후의 지침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어떤 표현처럼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말씀”이고, 설교는 “선포되는 말씀”이고, 성경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요 5:39)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곧 성경종교입니다.
종교개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성경,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Sola Scriptura)’입니다. 인간의 전통으로 섞어놓은 모든 것을 제하고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현 기독교 안에는 많은 교파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한 교리만 중요시하여 그 교파에 안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시작한 진리의 개혁은 그 후예들에게 와서 중단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루터 때에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진리의 빛은 종교개혁을 통해 앞으로 더 계속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루터, 칼빈, 츠빙글리, 제롬 등은 카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 바벨론 이라고 선언하며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개신교’는 ‘Protestantism’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라는 이름 자체가 ‘Protestant(대항자)’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는 그 이름을 잃어 버렸습니다. 뼈저린 희생을 치루며 지켜온 개혁 신앙의 귀중함을 망각하고, 성서적으로 명백한 오류임을 깨닫고도 개혁의 의지를 상실한 채 신앙적 양심에 아무 부담도 느끼지 않고, 개혁을 위한 어떠한 희생도 원치 않는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진정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입니까? 오늘날 누가 과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진리의 맥을 이어 가기 위해 일어설 것입니까? 이제는 여러분이 듣고 보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해 보아야 할 엄숙한 시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음모]
요즘 ‘에큐메니컬’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개신교가 심지어 루터교 마저도 화해와 연합이라는 명목아래 카톨릭과 다시 종교연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그들의 교리를 전혀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오직 카톨릭만이 정통적인 기독교회다. 카톨릭 외에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했습니다(2007.07.12.).
전직 예수회(Jesuit) 신부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개신교회를 로마 카톨릭의 세력 아래에 두기 위한 세 가지 계획이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공갈, 암살, 협박과 더불어 각 개신교 교단에 침투하여 목사, 신학교수, 각종 리더가 되어 카톨릭의 뜻대로 인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종교통합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계획이 바로 <성령운동>입니다. “<성령운동> 이것이 로마로 가는 마지막 다리가 된다“고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얘기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에서 판을 치고 있는 이러한 은사주의 성령운동이 카톨릭의 계획적인 작품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방언을 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신유는 물론 각종 기적이 넘쳐나는 것을 알고계십니까? 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도 방언하고 너희도 방언하는데, 다 같은 성령의 역사 아니냐? 뭘 그리 편협하게 교리적인 것으로 따지냐?”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우리가 하는 방언은 진짜고 너희가 하는 방언은 가짜다” 그럴 것입니까? “우리가 하는 치유는 진짜고, 너희가 하는 치유는 가짜다” 그럴 것입니까?
“오! 모두 다 성령의 역사고, 우리는 한 성령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한다.”그런 논리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 “성령”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사탄도 각종 기적을 베푼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오늘날 기독교에 만연하고 있는 각종 치유와 기적들의 출처가 어디인지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사탄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깨어 정신 차려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바티칸이며 이미 그들은 개신교의 각 신학대학과 언론을 장악하고 로마 카톨릭을 <같은 복음>을 가진 한 형제인 것처럼 꾸며 놓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랑과 연합>이라는 미명아래 모든 종교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찬란했던 중세시기와 같은 영화를 우리에게 재생시켜 줄 것이다!”
기적, 치유, 은사, 방언 이러한 성령운동은 하나님의 백성을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하는 사탄의 최후 기만술입니다. 마치 군인들을 거대한 목마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적군을 함락시키는 트로이의 목마처럼, 그렇게 개신교 깊숙이 침투하여 미혹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경고를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반복합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14).
짐승의 표 환란이 있기 전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기적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은 정치의 힘까지 뒤에 업은 채 더욱 강력한 제스처로 중세기의 영광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로 가는 시나리오입니다.
짐승의 표의 환란이 임박한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계 12:17)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참 백성, 마지막 남은 자손의 특징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나옵니다. 이 말씀은 계시록 14장에서 재차 반복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먼저,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할 수 없다”는 사탄의 주장을 침묵시키기 위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계명을 순종하는 생애를 사셨던 것처럼,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은 그 모본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것으로 그 결과가 드러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예수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음이란,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의 본성을 쓰시고 오셔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애를 사신 것처럼, 예수께서 가지신 그 믿음으로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이 있어야만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 믿음의 결론 역시 예수님의 형상을 충만히 반사하는 것으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의 믿음을 지키는 모든 일의 결론은 우리의 성품가운데 예수님의 형상을 충만히 반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이러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 출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예언합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28-32).
요엘서의 1차적인 성취는 사도시대에 이뤄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설교할 때, 요엘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 너희가 본 그대로 이 말씀이 성취됐다고 선포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요엘서의 이 말씀이 다시 한 번 성취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류역사가 끝이 나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최후의 전쟁시기입니다(벧전 5:8).
이 전쟁을 위해서는 참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며 우리는 그것을 “늦은비 성령”이라고 부릅니다. 사도시대는 씨앗의 파종을 위한 이른비 성령의 시대였고, 마지막 시대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른비가 가랑비였다면 늦은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장대비입니다. 요엘의 이 예언은 사도시대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이제 그 예언은 지금 이 시대를 사는 마지막 백성에게 보다 더 분명하게 성취될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백성을 마태복음 20장에서는 11시 일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3시, 6시, 9시에 장터에 나가 일할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일이 마쳐지지 않았는데 해가 저물려고 하자 급히 11시 일꾼들을 투입시킵니다.
이 내용은 비유로 끝나지 않고 역사에서 실체화되는 말씀입니다. 11시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직전의 시대, 인류역사의 문을 닫기 1시간 전에 긴박하게 투입되어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의 정체를 밝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사본인 십계명의 회복과 인간성소의 정결(죄를 승리하는 거룩한 삶)에 대한 복음, 그리스도와 사탄사이의 우주적인 대 전쟁, 재림 전 심판과 영원한 복음,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남은 무리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사명을 위해 11시 백성은 오늘도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깁니다.
이제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섬길 자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수 24:15).
“짐승의 표를 받고 사탄을 경배할 것인가? 하나님의 인을 받고 여호와를 경배할 것인가?” 곧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곧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살전 4:16)하실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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