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00호 열한시 200호 3. 깨닫지 못했거나 굴복하지 않아서

열한시 200호 3. 깨닫지 못했거나 굴복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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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했거나 굴복하지 않아서

기독교인이 변화되지 못하는 또 다른 두 가지 이유는, 영적으로 눈이 멀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거나, 진리를 다 알지만, 그 깨닫고 알게 된 진리에 굴복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굴복하지 않아서이다.

1. 깨닫지 못해서 변하지 않는다

신앙이 돈독하고 경건하다고 자부하지만, 영적으로 눈이 멀어 진리를 깨닫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 9:41)라고 하셨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도 바리새인과 같다. 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목사가 지시하는 일과 교회의 명령만 잘 좇으면 자신이 구원을 따 놓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인 줄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교회 사업을 열심히 하였어도, 전혀 변화되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 옛 성질 그대로, 옛 생활 그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은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다.

기독교인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영적으로 깨닫지 못해서이다. 깨어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해서이다. 지금 자신의 상태, 곧 성경이 말하는 “뜨뜻미지근”한 상태가 아주 좋고 편안하고, 또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있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하며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권고하고 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5~19).

영적 눈을 떠야 한다. 자신의 곤고한 상태를 보고 놀라 깨어나,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와 바른 복음에 온전히 굴복하고 변화되기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오래 신앙생활을 했어도 변화가 없고, 옛날 까마득한 시절에 한 번 거듭난 경험만으로 만족하고 살고 있다면 당신은 영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성령의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고, 영적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한다. 영의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일을 분별할 수도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아무리 태어날 때부터 모태 교인이었어도, 영적인 안목이 열리는 경험, 진리를 깨닫는 경험, 진리가 삶 속에 파고들어 진리대로 변화되어 살게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곧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하나님과 산 연결이 있는 구원받는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다.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진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결코 변화될 수 없다.

2. 진리에 굴복하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는 진리와 말씀에 굴복하지 않아서이다. 진리를 알고, 바른 복음도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지식에 해박한 사람들 중에 이상하게 변화되지 않고 옛 성질과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영적인 사물에 대해 아주 밝고, 영적인 것에 대해 알 것은 다 알고, 들을 것은 다 들어서 많은 성경 지식과 영적 경험에 대해 알고 있는 듯한데, 왜 변화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알고 있는 진리에 굴복하지 않아서이다. 아니, 굴복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진리를 잘 알고 있어도,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굴복하고 싶지 않으며,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좋아하는 어떤 우상이 있어서이다. 가지고 있는 영적 지식에만 만족할 뿐, 그리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마치 신앙의 경지를 다 이룬 듯한 착각과 영적 교만에 빠져 있을 뿐, 사실은 자신이 반석 되신 예수님 위에 떨어져 철저하게 깨어지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이다.

알고 있는 것과 변화된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물론, 성경과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영적 지식에 대해서 밝히 알고 있으면 올바른 영적인 경험을 갖기가 훨씬 더 수월하지만, 많은 경우에 머리로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진리가 마음과 삶 속에 녹아들어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그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그 사실을 예수님의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서 배울 수 있다. 비유에 나오는 열 처녀는 모두 등잔을 가지고 있었다. 등잔과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표상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그러나 등잔만 있고 그 속에 기름이 없으면, 빛을 낼 수 없다. 기름은 성령을 표상한다. 성경 스가랴서를 보면 성령이 기름으로 설명되어 있다 (슥 4:1~14 참조).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성령의 감화가 없는 진리의 이론만으로는 사람의 마음과 생애가 변할 수 없다. 비록 성경에 정통하고 해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하여 변화시키시는 능력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 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품성과 생애는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은 진리를 존중히 여기고, 진리를 옹호해 왔으며, 또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않았다. 반석 되시는 예수님 위에 떨어져 자신의 옛 성질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성령이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 하게 되고, 사람이 이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갈망하며 동의하게 될 때, 그 사람 안에는 새로운 품성이 심어지게 된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사람들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변화되지 않는 자들이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깊이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지도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 줄도 모른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점점 형식화되고 만다.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겔 33:31).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닌가, 진리를 잘 알고 있지만 변화하지 않고 주님의 성품을 닮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을 깊이 살피고 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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