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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안에 찾는 성서적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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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람들이 자신이 나가는 교회에 계속해서 다니게 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석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면 그들이 어떤 특정한 교회에 나가게 된 이유들을 알게 된다. 모태로부터 교인이 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교회의 교인이 된 것은 나의 부모님이 이 교회에 다니셨기 때문이지요.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이 교회의 교인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서 이 교회에 다녔고 단 한번도 이 교회가 성서적으로 올바른 토대 위에 서있는 참 교회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스스로의 연구와 선택에 의해서 교회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모태로부터 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또는 부모님께서 그 교회의 장로내지 권사이기 때문에 그 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선택 방법이겠는가? 여러분 자신을 불교 신자라고 가정해 보자. 내가 불교 신자인 여러분 앞에 성경을 펼쳐 놓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는 분명한 증거들을 소개했을 때, 여러분이 “나는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이고 나의 부모님도 불교 신자이기 때문에 비록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분명하게 깨달았을지라도 나의 종교와 신조는 바꿀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어떤 사람이 특정 종교를 모태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그 종교가 참된 종교라는 것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밀림 속에 사는 식인종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만일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은혜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을 때, 그 식인종이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조상 대대로 식인종이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도 식인종이셨고 또 그 위의 할아버지도 식인종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당신의 종교가 유일한 참 종교라고 할지라도 나는 나의 종교와 내 부족들의 전통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그에게 “당신의 모든 조상들이 식인종이었으므로, 당신 역시 식인종의 전통을 떠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코 그럴 수 없다. 내가 어떤 교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또는 나의 부모님이 그 교회의 교인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닌 더욱 분명한 성서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는 교인이 되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그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있다. “내가 이 교회의 교인이 된 것은 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 역시 결코 그리스도인다운 대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여러분은 직장 동료를 좋아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의 믿음을 그 사람의 믿음과 일치시켜야만 하는가? 여러분은 어떤 상점의 점원이 좋기 때문에 그 상점의 단골 손님이 되어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점원이 행하고 믿는 바를 여러분이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교회의 교인들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영혼과 구원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교회를 부주의하게 선택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참 교회와 진리의 관계

어떤 이들은 단순히 자기 집 가까이에 있는 교회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장로 교회에 다니던 사람이 이사를 간 다음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침례 교회에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요즘처럼 교통이 복잡한 때에 멀리 운전하지 않아도 되고, 또한 비싼 휘발유도 절약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여러분에게 묻는다. “집과 교회 사이의 거리가 자신이 어떤 교회를 다니기로 결정할 수 있는 확실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자신과 가족이 다녀야 할 교회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분명한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교회는 진리의 터가 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어떤 특정 교회에 참석하는 유일의 이유는 부모님이 그 교회의 교인이시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 가족들이 다니기 때문도 아니요, 집 근처에 교회가 있기 때문도 아니요. 우리가 평생동안 다녔기 때문도 아니요, 그 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도 아니요, 그 교회 목사님의 인격이 좋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성경의 교훈과 진리에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어야 한다. 만약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성경이 가리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라고 참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를 찾아야만 한다.

이떤 분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기독교계에 300여개 이상의 많은 교파와 교단이 존재하는데, 그토록 많은 교회들 중에서 어떤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세워 놓으신 유일한 참 교회인가를 아는 일이 가능합니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당대의 서기관과 바라새인들로 더불어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doctrine, 교리)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l7). 이것이 참 교회를 찾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행하기 원한다면, 그는 “교훈”, 즉 성경의 교리(doctrine)를 먼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주님, 나는 지금 주님께 내 마음을 완전히 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르겠습니다. 혹시 내 생애에 변화를 원하신다면 나는 즐겨 그 변화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또한 이런 질문을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과 교리가 각 교단이나 교파에 산재해 있는데, 어떻게 어떤 가르침과 교리가 성서적인지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놓기만 한다면, 진리를 알 수 있나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약속과 보장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여러분이 진리를 알기 원하고,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실 때에 기꺼이 여러분의 생각과 사상과 생애를 고치기 원한다면, 여러분은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가납하신다는 사실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spirit, 성령)과 진정(truth, 진리)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참 교회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성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각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유일한 참 교회를 통해서 진리가 전수되어 내려왔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증인이 없었던 시대는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참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조직으로 구성된 교회가 아니다. 참 교회란 비록 각각 다른 신조와 교파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에 마음과 생애를 바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뜻한다. 모든 교회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충성된 남녀들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것을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정직하고 충성된 남녀들을 하나님의 진리 속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참 교회를 찾기 위하여 자동차를 몰고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어느 교회가 가장 클까?”를 살펴 보아서는 안된다. 성경 역사를 통해 참 교회는 종종 매우 작았다. 참 교회의 특성은 그 규모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대한 충성됨에 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진실된 마음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두 종류로 압축하여 묘사하고 있다.

1) 여자의 남은 무리 : 각종 상징을 사용해서 기록된 요한계시록에서 용은 마귀 곧 사단을 의미하는데(계 12:9), 마지막 시대에 사단은 여자의 남은 무리 즉, 하나님이 참 백성(참 교회)와 싸우는 장면이 요한계시록 12:17에 묘사되어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위에 섰더라” 이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지막 시대에 마귀가 상대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증거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마지막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강요될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무리들에게도 그대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14:11,12

2) 바벨론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 : 비록 잘못된 교리와 비성서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벨론이 되어 버린 교회 속에도 나름대로 진리를 굳게 붙잡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그들을 바벨론 교회들로부터 불러 내어 하나님의 참 교회와 연합하기를 촉구하시는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하늘로서 다른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계 18:2,4.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 증거를 가진”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 진리를 전파하고 참된 복음을 전하면서 바벨론의 교회들이 무너졌음을 경고할 때, 바벨론에 속해 있던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 전하는 진리의 기별을 듣고 자신들이 속해 있던 바벨론 교회로부터 나와 하나님의 참 교회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살펴 보았던 바와 같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특성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오늘날 많은 교파와 교단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구원론들 중에서 어떤 것이 이 마지막 시대에 여자의 남은 무리들이 전하는 구원론인가? 어떤 구원론이 요한계시록이 분명히 지적하고 있는 여자의 남은 무리의 특징과 조화를 이루는 가르침인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앞서, 나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어떤 가르침이 하나님의 계명을 올바르게 다루고 있으며, 어떤 구원론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여자의 남은 무리의 특성과 올바른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주의깊게 살펴 봅시다!”라고…

성경이 말하는 참된 구원론, 우리는 신학적으로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의를 얻어 구원 받는 길을 제시하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여자의 남은 무리가 믿고 가르치는 구원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특별히, 오늘날 기독교계에 난무하고 있는 잘못된 구원론이 생겨난 역사적인 배경과, 그 비성서적인 가르침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참된 성서적인 구원론과 비교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글들이 독자 여러분들의 구원과 영생에 놀라운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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