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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구속의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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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가 주어진 이유와 그 중요성

마음을 정하고 성경통독을 시작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세기는 잘 읽어 나가는데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읽으면서 어렵고 지루함을 느껴 대충 읽어 나가거나 그 부분을 읽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출애굽기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레위기 전체가 이해하기가 어려워 보이는 성소의 기물들과 각종 제사에 대한 설명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절) 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성경 말씀은 분명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고 한 말씀 한 말씀이 우리를 교육하여 온전케 만들도록 쓰여진 것임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의 첫 부분의 책인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자세히 반복하여 설명되어 있는 성소에 대한 기록을 무시하거나 구약에 쓰여진 것이니 이미 지나간 것이라고 덮어 둘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성소제도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의 놀라운 구속의 섭리가 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 청사진이다.

사실 성소제도의 시작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난 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옷을 통해 희생이 필요한 제사제도를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성소제도는 하나님께서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어떻게 범죄한 죄인이 다시 죄의 문제에서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에 희생된 동물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리고 모세시대 당시 죄로 인해 희생당한 동물들도 또한 예수님을 상징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성소의 의식 하나 하나는 예수님의 봉사의 생애와 사역을 의미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구원의 경험과 단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이번 호는 성소제도가 시작된 이유와 성소의 중요성, 성소의 모형이 주는 의미, 성소 기구들이 갖고 있는 의미, 성소에서 이루어진 제사 제도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성소를 통해 예수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사역, 그리고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과 서 있어야 할 곳, 등을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 놓았다. 앞으로 읽어 나갈 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소를 통해 보여주신 놀라운 구원의 길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고 그 길에 들어서서 마음에 참된 평안을 찾기를 바란다.

1. 성소 제도가 주어진 이유

인류의 타락

인류의 구원은 인류의 타락에서 연유되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영원히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사망, 질병, 슬픔, 고통, 늙음과 같은 죄의 결과들도 물론 이 지구상에 전혀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랑과 화평과 행복과, 영원토록 전진 되는 기쁨과 발전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그 모든 조화는 깨어지고 엄청난 어두움과 재난의 그림자가 이 세상에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로마서 6:23). 그런데 성경은 인류의 조상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다 죄를 범하였다고 선고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로마서 3:23). 물론 죄를 시작하고 그 결과로 죄에 대하여 약하여진 본성을 유전하여 준 총체적인 책임은 아담과 하와에게 있다고 하겠지마는 그러나 그들의 모든 후손들도 한결같이 자기들의 선택을 통하여서 죄들을 짓게 되었고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인류가 타락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는 어떻게 성립되는 것인가? 성경은 죄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려 주고 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4. 다시 말해서 죄란 하나님의 율법인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이 우주에는 법칙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존재하는 데는 원칙이 있다. 별들이 회전하는 괘도가 있고 생물들이 호흡하는 생성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 법칙을 깨어 버리면 질서와 평화와 행복이, 아니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의 존재 자체가 파괴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연계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도 법칙이 존재한다. 그 법칙은 어떠한 면에서 천연계의 법칙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도덕적이고 영적인 법칙이 또한 자연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잘못된 도덕적인 법칙을 세우고 원자 폭탄을 만들면 자연계에 엄청난 파멸을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도덕적인 법칙을 어기게 되면 이웃들에게 내지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아니 더 나아가서는 온 우주에 큰 슬픔과 고통을 불러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들인 사기, 절도, 강간, 살인, 불효, 시기, 질투 등의 두려운 결과들을 주목하고 살지 아니하는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정부, 곧 우주의 헌법인 계명을 무시하는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타락하게 된 것이고, 그 결과로 무서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

하나님께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분부는 에덴 동산의 눈에 보이는 계명이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그 분의 지배를 받는 데에만 안정과 평화와 행복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는 그 계명을 어기고 사단의 꾀임을 더 신뢰하였다. 마귀는 하나님을 이기적인 분으로 고소하였다. 불공평한 분으로 고소하였다. 이 과실을 먹으면 하나님 자신처럼 눈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도 괜찮은 것이며 결코 죽지 않을 테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기만하였다. 인류의 시조는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더 신뢰하고서 우주의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계명을 어기고 반역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가슴에 너무나 커다란 슬픔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제 선택을 하셔야만 하게 된 것이다. 범죄한 인간을 그저 대수롭지 않은 듯 용서해 주어 버리면, 온 우주에 거하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엄청난 반역과 파괴가 우주를 휩싸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셨다. 그렇다고 인류를 그저 영원히 소망 없이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실 수는 도저히 없으셨다. 그러한 갈림길에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고 두 번째의 은혜의 기간을 가지고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여 주시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자유 의지와 자유 선택권을 주시었다. 자유 의지와 선택이 없는 인간은 로보트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이요, 또한 자유 의지와 선택이 없이는 성품의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울러서 인간에게 자유 의지와 선택권을 주셨을 때에는 인간이 반역과 불순종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신 일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계획 속에는 인류의 타락의 가능성과 그 사후 대책에 대한 계획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이 되어 오셔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고 또한 그들에게 의로운 삶의 모본을 보여 주시는 일이었다. 그 일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생명의 댓가를 치루는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의 선택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그것은 쇼(Show)가 아니었다. 성소 제도의 속죄제를 공부해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참으로 우리의 두뇌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는 두 번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하여 태어나게 될 수많은 자손들을 보시고 차마 인류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셨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내어다 보신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게 된다면 현재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이 생명의 가치야 말로 이루 형용 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우리의 지식과 성품이 계속적으로 영원토록 발전하여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태어날 아담의 후손들에게, 구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그 적당한 숫자가 차기까지, 또한 죄악의 역사를 용납하실 수 있는 기간까지 이 땅에 태어 나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허용하셔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지구상에 죄의 결과가 그대로 임하도록 허용하시는 일이었다. 그것은 공평한 처사였고 또한 사단과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온 천하에 드러날 때까지 그 공정성을 지키셔야만 하시기 때문이었다. 또한 죄와 반역은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 결과를 보여 주심으로 공개하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하지만 잠깐 살다가 죽게 되어있고 또한 죄의 결과인 슬픔과 질병과 늙음의 영향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유일한 이유와 목적은, 사는 동안 더듬어서 진리와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여 구원의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기회를 주시는데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 17:25-28 참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생명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고 구원의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삶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아무리 어려운 시련들을 당하게 되든지 간에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놀라운 기회에 대하여 영원토록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은혜의 기회는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성소 제도

인간을 다시 살게 해 주신 후에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계시가 바로 성소에 대한 계시였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데,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기는 인류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죽 옷을 해 입히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죽 옷을 해 입히시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이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소의 의식 속에는 반드시 소나 양이나 염소 등 제사에 바치는 동물의 희생이 수반되어야만 하는데, 그 동물의 죽음은 바로 장래에 십자가에서 돌아 가실 속죄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소 제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실 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여 주신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유일한 계시였다. 그러므로 죽음의 선고를 들은 아담이 이러한 하나님의 구속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성소 제도의 제사 제도에 대하여 알고 난 후에 감격하여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 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산자의 어미”라는 의미였다. 지금 방금 사망의 선고를 받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인 성소 제도에 대한 계시는 그에게 커다란 소망을 안겨다 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내를 산자의 어미라고 불렀다. 시편 77:13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道-필자 주) 성소에 있으니 누가 우리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이리이까?” (킹 제임스 성경 번역).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직후의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인류의 시조와 하나님 사이에 있었을 법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상상하여 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필자가 만든 것이지마는 분명히 그러한 내용의 말들이 오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범죄한 후 떨고 서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아담아! 네 뒤에 있는 동물들을 보느냐?” “예! 하나님! 두 마리의 어린 양들이 뛰 놀고 있군요!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동물들 중 하나입니다.” “그 양들을 불러보렴!” 아담과 하와가 휘파람을 불자 그 두 마리의 어린 양들은 껑충 껑충 뛰어와 한 마리는 아담의 품으로 또 다른 한 마리는 하와의 품속으로 안긴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께서 다시 명령하신다.

“아담아! 저기에 있는 돌 두개를 집어 오너라!” 영문도 모르고 돌들을 집어오는 아담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아담아! 그 돌들을 서로 부딪쳐서 깨뜨려라!” 아담이 돌들을 깨뜨리자 하나는 칼처럼 날카롭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명령하신다. “아담아! 이제 그 돌로 그 어린 양의 머리를 힘있게 내리 치거라!” “하나님! 저보고 이 양을 죽이라는 겁니까?” 놀라서 쳐다보는 아담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더 엄숙하게 말씀하신다. “그렇다!”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할 수 있는가! 아담은 명령에 따라 돌을 들어 양의 머리를 내리 쳤다. “더 세게!” 더 세게 내려친 돌을 맞은 죄없는 양이 바르르 떨면서 눈을 크게 뜨며 피를 흘리며 죽어 간다. 죽음의 장면을 처음으로 목격한 아담은 두려움에 질려서 양의 시체를 땅 바닥에 떨어 뜨리며 이렇게 묻는다. “하나님!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그 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담아! 아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앞으로 너희를 위하여 내가 저렇게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야!” 구속의 계획을 한 눈으로 알아차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 오, 하나님! 그렇게 하시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오, 주님!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참한 죽음을 당하셔야 속죄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부터 죄를 정말로 미워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마음에 고통을 다시 가져다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오, 하나님!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를 정말로 미워합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을 반복 할 마음이 없습니다!”

성소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성소 제도는 인간들이 직접 그 의식에 참가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생생하게 보고 느끼도록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성소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은 우리들의 구원의 문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3. 모세가 지은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 하실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식양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양식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8,9. 이 성소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다시 같이 사실 수 있는 계획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고안 되었다. 이 성소 제도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지상 생애와 그 분의 사역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 가셔서 하실 봉사 사업까지를 상징하는 기구들과 예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의 기구들 하나 하나, 의식 하나 하나, 그리고 색깔 하나 하나 마다에 인간을 구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가르침과, 또한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해야 할 구원의 단계들을 상징하는 표상들이 알알이 맺혀져 있다. 이 성소의 모형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양을 계시 가운데 보여 주시고 그 모형대로 짓도록 모세에게 지시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8:5.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도 모세가 지었던 성소 모양 비슷한 참 성소가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성소 제도야 말로 하늘이 내어 주신 우리 인류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청사진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을 인간들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계획 하심으로써, 인류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이제, 몇 기사에 걸쳐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

4. 성소의 세부분과 구속 사업의 세 국면

성소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세 단계의 사역을 통하여서 이루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의 대 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6:19,20; 7:24,25; 8:1,2.
예수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 뜰에서, 첫째 칸인 성소에서 그리고 둘째 칸인 지성소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이루시는 것으로 표상 되어 있다.

성소 뜰

성소 뜰에서 죄인이 끌고 온 희생 제물을 죽이고 번제단 위에 태우는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류를 위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어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돌아 가실 것을 상징한 것이요,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히 10:12
성소, 구속의 청사진

Sola Scriptura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7]

성소 첫째칸 (성소)

첫째 칸 성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 성소로 가시어 당신께서 흘리신 피를 힘입어 회개하며 나아오는 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며, 죄를 사하시고, 나아가서는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나누어 주시는 일을 행하신 사실을 나타내 주는 것인데, 그 일은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해인 A.D. 31년 부터 진행해 오셨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1-12.

성소 둘째칸 (지성소)

둘째 칸 지성소는 예수께서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구속의 국면을 상징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성소의 세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들을 위한 구속 사업의 세가지 국면들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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