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지 201-250 201호 열한시 201호-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

열한시 201호-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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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한 승리는 가능한 것인가?

–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

제1부: 승리하는 사람들

죄를 승리하는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일, 그리고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문제가 달린 아주 중요한 것이며, 또한 참 복음을 믿는가 아니면 거짓 복음을 믿는가를 가려낼 수 있는 시금석이기도 합니다. “죄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연구하는 첫 계단으로,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의 예를 살펴보며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바디매오의 이야기

  1. 바디매오의 경험과 형편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행하신 모든 기적은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행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바디매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디매오의 경험은 기적, 그 자체입니다. 그는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 10:46, 47)

바디매오의 상태는 어떤 상태였나요?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소경은 무엇을 뜻할까요?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고 하는 것은 멸망 당한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계 3:17, 벧후 1:9, 요 12:40 참조). 바디매오는 멸망 받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그를 디메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어로 그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그 이름의 뜻은 “아주 비싼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광석을 정련하는 곳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정련되기 전의 광석들을 보면, 그것들은 시커먼 흙들이 많이 묻어 있어서, 도무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풀무불 속에 집어넣고 용광로 속에서 정련하기 시작하면, 그리고 센 불에서 한참을 끓인 다음, 용광로의 문을 열면 아주 깨끗한 납이 나옵니다. 제일 마지막 과정에서 화학물질을 넣으면, 그 찌꺼기 같은 데서 납들과 금과 은이 나옵니다. 그 귀중한 보석들이 시커먼 흙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한 존재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과정에 대하여 잘 모르며, 우리 자신들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용광로 속에 있나요? 불같은 시련 속에 있나요?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나는 사람들을 오빌의 금보다 더 귀중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찬송합시다! 그것은 우리의 성품이 귀중하게 단련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를 다 내보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리고 길거리에서 “참 높은, 귀중한 가치 있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경 바디매오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는 돈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조건과 형편이 어떠했나요?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곤고한 것, 가련한 것, 가난한 것, 눈먼 것, 벌거벗은 것, 이것이 바디매오의 형편이었습니다. 길가에서 구걸하고 있는 바디매오, 그의 모습은 라오디게아 형편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벌거벗은 상태였습니다.

2. 바디매오가 한 일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막 10:47)

그는 볼 수 있는 눈은 없었지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온다고 했나요?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이 바디매오는 기적을 행하는 한 분이 팔레스타인에 왔다 갔다 하면서 기적을 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사렛 예수란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다윗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었나요? 그는 공개적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선지자라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들은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바디매오는 “당신은 다윗의 자손 메시아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으므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말하며, 주님께 그의 형편을 인정하고 자기의 필요를 요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 10:48)

사람들은 “당신, 너무 떠든다. 조용히 해라!”라고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가 잠잠하기를 원했을까요? 거기에는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지만, 거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언급하고 있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똑같은 문제가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고, 그 능력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잠잠하라는 공격을 받습니다. “크게 말하지 마라”,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용히 해라”. 만일,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 곧 죄를 승리하는 복음을 설교하면,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잠잠하라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럴 때 바디매오가 그 말을 들었나요? 그는 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3. 구원의 역사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막 10:49)

주님께서는 어떤 영혼이라도 자비와 은혜와 구원을 향해서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그 사람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막 10:50)

50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겉옷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겉옷은 “성도의 품성”(계 19:8 참조)을 상징합니다. 바디매오는 어떤 겉옷을 입고 있었나요? 좋은 옷을 입고 있었을까요? 그는 아주 더러운 누더기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 더러운 옷은 “죄”를 상징할 수 있고, 부족한 성품을 상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더러운 누더기를 더 입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경험입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51)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는 대답했습니다. “주님이시여, 나는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시나요? 새로운 마음, 주님의 율법이 적혀진 마음, 딱딱한 마음이 제해진 부드러운 마음을 원하시나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가라”(막 10:52).

바디매오가 눈을 떠 보게 되는 일이 얼마나 걸렸나요? 그는 “곧”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치실 때, 그에게 완전한 시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치료하실 때, 100% 치료하십니다. 그것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즉시로 일어나는 경험입니다. 바디매오의 이야기는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가 진정으로 회개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새 마음을 주셔서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때 우리 생애에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삭개오의 이야기

  1. 삭개오의 형편

누가복음 19장에는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에 있었을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가실 때 거기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삭개오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뜻은 “순결한 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순결한 자였을까요? 아니요.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로서, 로마 당국을 위하여 세금을 걷는 사람이었으며, 부정직한 도둑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아주 미워했습니다.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아들에 대한 높은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순결한 자”라는 뜻을 가진 “삭개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세리가 되었을까요? 그는 세리가 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부정직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남모르는 소원, 곧 다시 “순결한 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삭개오도 바디메오처럼 예수님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꼭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 19:3) : 삭개오는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틈에서 예수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가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4) :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보기 원하면 우리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나무에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 19:5) : 예수님께서 그를 올려다보시고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사 43:1).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이름을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이 우리 생애에 개입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급히 내려와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왜냐하면 주님께서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코이노니아” 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코이노니아”는 헬라어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교제, 아주 가까운 교제를 말합니다. 이것은 관계이며, 경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의 마음속에 특별한 경험과 관계로 들어오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식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아주 즐거워하며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렸습니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예수님 지금 뭐하시는 거야? 이 사람이 도둑이고 세리인 것을 모르시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하게 하려고 왔다. 건강한 자는 의원이 필요 없지만 병든 자는 의원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겉으로 사람들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또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 그리고 삭개오는 그 즉시로 그것을 갚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바디메오나 삭개오는 멸망 받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둘 다 눈먼 소경이었고, 벌거벗은 가련하고 곤고한 도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의 생애를 어루만지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필요를 느끼고 그분께 나오는 사람들을 고쳐주십니다.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능력을 주셔서 새로운 생애를 살게 하십니다. 그분의 능력으로 다시는 죗된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이것이 죄를 승리하는 생활이며, 이런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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